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고조되며 에너지 안보에 비상등이 켜졌다. 정부는 원전 가동률을 높이고 폐쇄 예정인 석탄발전소의 수명 연장까지 검토하며 전력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인공지능(AI)과 데이터센터 산업의 급팽창으로 ‘전력 먹는 하마’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당연한 조치다. 하지만 정작 우리 곁에는 수조원을 들여 완공하고도 전기를 보내지 못해 멈춰 서 있는 최첨단 발전소들이 있다. 강원 동해안의 ‘전력 고립’ 사태는 국가 에너지 정책의 난맥상이다. 현재 강릉 안인화력, 삼척 블루파워, GS동해전력 등 동해안 일대의 대규모 화력발전소들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설비 용량이 수천 메가와트(㎿)에 달하지만, 실제 가동률은 20~30% 수준에 머물고 있다. 발전기 2기 중 1기는 아예 세워두고 있다.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단 하나,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 등 수요처로 보낼 ‘길’인 송전망이 없기 때문이다. 동해안~신가평 초고압직류송전(HVDC) 선로 건설 사업이 주민 반대와 행정 절차 지연으로 수년째 표류하면서 발생한 참사다. 이러한 ‘전력 동맥경화’의 피해는 고스란히 기업과 주민에게 전가되고 있다. 발전소 건립에 투입된 자금만 도합 수십조원이 넘는다. 전기를 팔아 수익을 내야 할 기업들은 미수금만 쌓여가며 고사 직전의 재정 상황에 몰렸다. 더 심각한 것은 지역경제의 붕괴다. 발전량에 비례해 지급되는 지방세 수입이 급감하고, 지역 상생 지원금과 대학생 장학금마저 끊겼다. 발전소와 생계를 같이하는 협력업체 종사자 1,000여명의 일자리는 풍전등화의 위기다. 국가 기간시설을 유치하며 지역 발전을 꿈꿨던 주민들에게 돌아온 것은 ‘경제적 공동화’라는 가혹한 대가뿐이다. 정책 방향도 엇박자다. 한편에서는 에너지 위기를 외치며 낡은 발전소를 다시 돌리겠다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최신 기술이 집약된 동해안의 고효율 발전소들을 방치하고 있다. 이는 국가 자산의 극심한 낭비다. AI 시대의 전력 수요 대응을 위해 반도체 클러스터와 데이터센터 유치를 외치면서, 정작 생산된 전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제 정부는 동해안 발전소들을 ‘천덕꾸러기’가 아닌 ‘에너지 전초기지’로 재평가하고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무엇보다 송전망 건설 사업에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해 완공 시기를 최대한 앞당겨야 한다. 단순히 송전망 확충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전기가 남는 곳’인 강원 동해안에 데이터센터 등 대규모 전력 소비 기업들을 직접 유치하는 역발상이 필요하다.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을 적극 이용해 발전소와 기업 간의 직접전력구매(PPA) 제도를 본격화하고, 차등 전기요금제 도입을 통해 기업들이 동해안으로 찾아올 유인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나아가 화력발전 인프라를 수력 및 양수발전 등 친환경 에너지 전환의 거점으로 활용하는 중장기 로드맵도 서둘러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