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의 포성이 6주째 이어지는 포연 속에서 들려온 소식은 전쟁의 정당성 여부와는 별개로 묵직한 울림을 던진다. 지난 3일 이란군의 공격으로 격추된 F-15E 전투기에서 탈출해 적진 한복판, 험준한 산악지대에 고립됐던 미군 무장관제사 대령이 36시간 만에 극적으로 생환했다. 권총 한 자루에 의지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버틴 군인 정신도 경이롭지만, 그를 구하기 위해 국가가 보여준 태도는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우리 사회에 다시금 던지고 있다.
이번 작전은 그야말로 ‘건초 더미에서 바늘 찾기’였다고 한다. 하지만 미군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중앙정보국(CIA)은 가용 가능한 모든 정보 자산을 풀가동해 좌표를 찍었고, 전설적인 특수부대 네이비실 ‘팀6’는 동료를 구하기 위해 망설임 없이 사지로 뛰어들었다. 작전 과정에서 수송기 고장과 이란군의 거센 반격 등 추가 희생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음에도 미군 지휘부는 결코 ‘포기’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효율과 비용의 경제적 논리로만 따졌다면 결코 실행할 수 없었을 무모한 도박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미국은 단호하게 증명했다. 즉, 단 한 명의 국민, 단 한 명의 전우를 위해서라면 국가가 가지고 있는 모든 역량과 전력 자산을 쏟아붓는다는 신조가 단순한 구호가 아님을 미국 국민에게 보여줬다.
이러한 미군의 ‘리브 노 원 비하인드(Leave No One Behind-뒤에 남기지 말고 함께 떠나라)’ 정신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9년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리차드 필립스 선장을 구출하기 위해 저격수들을 투입했던 ‘머스크 앨라배마호’ 사건이나, 1976년 이스라엘이 자국민을 구하기 위해 4,000㎞를 날아 엔테베 공항을 급습했던 작전들은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두 눈으로 보여주는 역사적 교본이다. 이들 국가가 강대국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데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는 그 고집이 그들을 강대국으로 만든 것이다. 우리는 이번 기회에 눈을 안으로 돌려 현실을 냉철하게 살펴야 한다. 6·25전쟁 당시 북한 땅에서 실종되거나 포로가 된 국군은 최대 7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정전협정 이후 고국의 품으로 돌아온 이는 8,000여명인 극소수다.
1994년 조창호 중위가 사선을 넘어 탈북하며 비로소 그 비극적 실체가 세상에 드러났다. 이제 90세를 넘긴 생존 국군포로들은 한 줌의 흙이라도 고향 땅에 묻히길 소망하며 스러져가고 있다. 그들의 생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 왔는지 자문해야 할 때다.
국가는 국민에게 충성과 희생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 요구가 정당성을 얻으려면 전제가 필요하다. “당신이 어디에 있든, 어떤 위험에 처하든 국가는 반드시 당신을 찾아낼 것이며, 끝까지 보호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다. 그럴 때 국가는 국민에게 일당백의 역할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전쟁의 명분이나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단 한 명의 국민을 구하기 위해 국가가 모든 것을 걸 때 국민은 비로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용기를 얻는다. 그것이 국가 존재의 유일무이한 이유다.
과거 정부들이 국군포로나 유해 환수 문제를 정치적 이벤트의 소품처럼 다루거나 북한의 눈치를 보느라 소홀히 했다면, 이재명 정부는 달라야 한다. 북한에 억류된 국군과 납북자들을 잊는 것은 국가의 근간을 스스로 허무는 일이다. 미군 대령의 생환 소식이 부러움에 그쳐선 안 된다. 산악지대에서 권총을 쥐고 조국을 기다렸을 그 조종사의 간절함이, 지금도 북녘땅 어디선가 고향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우리 국군포로들의 눈물과 무엇이 다르겠나.
국가는 국민의 생명 위에 군림하는 조직이 아니라, 그 생명을 담는 그릇이어야 한다. “국가는 당신을 잊지 않는다”는 이 평범하고도 위대한 약속이 실천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국가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이번 미군 구출 작전이 주는 교훈을 뼈아프게 되새겨야 한다. 끝까지 책임지는 국가만이 국민의 진심 어린 충성을 받을 자격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