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3년 4월11일, 온 국민의 눈길은 강릉 바닷가로 향했습니다. 이날 오전 8시30분 경 바닷가에서 가까운 난곡동에서 시작된 산불이 강풍을 타고 대형 산불로 확산했기 때문입니다. ‘강릉 산불’이라 불리는 이날 화재는 민가 지역에서 시작된 산불이어서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인적, 물적 피해를 양산했습니다. 특히 국가 보물인 경포대를 비롯한 경포호 주변의 오래된 정자들로 화마가 덮치면서 강릉시민은 물론, 온 국민의 마음을 졸이게 했습니다.
당시 경포대를 사수하고자 총력을 기울인 것은 18년 전인 지난 2005년 4월 5일에 발생한 양양 산불의 트라우마도 작용했습니다. 당시 산불로 천년 고찰인 낙산사가 거의 전소에 가까운 피해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고열에 녹아내린 낙산사 동종(보물 479호)은 당시 우리 국민의 무참한 마음을 대변하는 듯했습니다. 언론과 국민의 눈길이 온통 경포대 사수에 쏠린 것은 이러한 상처 때문이었습니다. 사전 살수 작업과 현판 이운 등 긴장 속에 펼쳐진 사투 끝에 경포대는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좋아했던 상영정(觴詠亭)은 전소가 되어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고, 경포호와 가장 가까운 방해정(放海亭)도 큰 해를 입었습니다.
이날 사수에 성공한 경포대의 역사에서 늘 함께 거론되는 인월사(印月寺)도 전소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대웅전, 관음전, 담마센터, 어린이법당 등 전각 대부분이 소실되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경포대는 1326년 현재의 자리가 아니라 바닷가 쪽으로 700미터쯤 더 들어간 옛 인월사 터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그 뒤 1508년 강릉 부사 한급이 현재의 자리로 옮겨 지었다고 전해집니다. 화재 당시 인월사는 옛터 바로 아래에 자리 잡고 옛 이름을 되살려 50여 년 동안 성장을 거듭해오던 중이었습니다. 특히 강릉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위빠사나 명상 수행을 도입해 주목받던 사찰이었습니다.
산불로 전소가 된 지 3년이 흐른 지난 4월 초입에 인월사를 찾았습니다. 이전에도 몇 번 이곳을 찾은 적이 있지만, 주변이 온통 불에 탄 채 잘린 검은 그루터기들로 둘러싸여 있어서 일주문 안으로 들어가기가 저어되었습니다. 이번에 이곳을 찾은 것은 잿더미 위에 지은 ‘인월사 담마센터’가 세계건축상 대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받은 세계건축상은 현대 건축 담론에 흥미로운 질문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혁신적이고 주목할 만한 프로젝트를 선정하는 것으로, 53개국 243명의 건축 관련 심사위원들이 총 8점의 대상작을 뽑았다고 합니다.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상을 여럿 수상한 윤경식 건축가가 설계한 ‘인월사 담마센터’는 어떻게 이 자그마한 전각이 ‘혁신적이고 주목할 만한 프로젝트’라는 기준을 걸고 평가하는 건축상에 선정될 수 있었는지를 온몸으로 증명해줍니다.
건축가가 이 전각을 설계하면서 내세운 주제는 ‘덜 종교적인, 더 부처 닮은’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 주제를 ‘덜 위압적인, 더 부처님 가까이’라고 읽어냅니다. 주지 스님이 초기 불교에 가까운 위빠사나 수행을 전파하려고 애쓰고, 전각 이름을 애써 ‘담마센터’라고 명명하는 것도 다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많은 종교가 그렇듯, 시간의 중첩은 과도한 형식과 권위를 만들어 내고, 원래의 순수 담백한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게 만듭니다.
인월사 담마센터는 크지 않은 전각 안팎에다 불교 사상과 인문학적 상상력, 그리고 현대적 감각을 두루 담아냈습니다. 건물 외형과 지붕은 경전에 근거하여 초승달 모양의 부처님 눈썹형상으로 만들었고, 빛이 넘나드는 벽과 은하와 같은 천장은 불교의 인연법과 화엄사상을 연출해냈습니다. 입구에는 ‘카르마의 거울’이라는 작은 연못을 만들어 자신의 업과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하면서 동시에 인월(印月), 즉 ‘호수 위에 찍힌 달의 도장’이라는 절의 이름을 상상하게 했습니다. 비가연성 자재를 사용해 화재 위험을 낮춘 것도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저는 삼배를 올리면서 꽃 피는 4월이 더는 ‘가슴 먹먹한 4월’이 되지 않기를 발원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