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화천에 자리한 인공호수는 ‘화천저수지’라 하다가 오늘날 한국전쟁의 대승을 기리는 이름으로 자연스럽게 ‘파로호(破虜湖)’라 불린다. 그러나 이 호수가 처음 형성되던 시기, 즉 일제강점기 화천댐이 건설되던 당시에는 전혀 다른 이름이 사용되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대붕제(大鵬堤)’라 불렸고, 실제 댐의 명판에는 ‘대명제(大䳟堤)’라는 다소 낯선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같은 시설을 두고 왜 두 개의 이름이 존재했을까.
‘대붕(大鵬)’은 중국 고전 『장자』 「소요유」에 등장하는 상상의 거대한 새다. 이 새는 북해에서 남해까지 날아오르며 만리를 비상하는 존재로, 오래전부터 ‘큰 뜻’과 ‘대국의 비상’을 상징해 왔다. 한자 문화권에서 이 이미지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세계를 포괄하는 사상적 은유로 기능해 왔다. 만약 ‘대붕제’라는 이름이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다면, 그것은 단순한 저수지나 댐을 넘어 ‘거대한 국가 사업’ 혹은 ‘문명적 도약’을 상징하는 명칭으로 읽힐 수 있다.
이러한 명칭의 이면에는 당시 일제가 추진한 전력 증강 사업의 압도적인 위용이 투영되어 있다. 1944년 준공 당시 굽이치던 북한강의 물줄기를 가로막아 거대한 호수를 만들어낸 화천댐은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했으며, 그 거대한 콘크리트 벽은 인간이 자연을 굴복시키고 통제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비쳤다.
그런데 정작 명판에는 ‘鵬’이 아닌 ‘䳟’이라는 생소한 글자가 쓰였다. ‘䳟’은 사전에서도 쉽게 찾기 어려운 희귀 문자로, 큰 새를 의미하는 점에서 ‘붕’과 통하지만 고전적 상징성은 훨씬 희미하다. 이 선택은 우연이라기보다 의도된 조정으로 보인다. 즉, ‘대붕’이 지닌 장대한 이미지는 취하되, 그것이 내포한 철학적·문명사적 무게는 일정 부분 덜어내려는 시도였던 것이다.
여기에는 당시 식민 권력의 언어 전략이 엿보인다. ‘대붕’은 『장자』에서 비롯된 중국적 세계관과 깊이 연결된 상징이다. 일본 제국이 조선을 지배하던 상황에서 그러한 상징을 그대로 차용하는 것은 문화적 맥락에서 부담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의미는 유지하면서도 직접적인 연상을 피할 수 있는 이체자를 선택함으로써, 이름의 위상은 유지하되 그 해석의 방향은 통제하려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이는 피지배 민중의 자긍심을 고취할 수 있는 ‘대국적 상징’을 경계한 결과이기도 하다. 조선의 산천에 뿌리내린 거대한 댐이 민족의 비상을 꿈꾸는 ‘대붕’으로 인식되기보다는, 오직 제국의 통치 기술과 자본이 일궈낸 기계적인 성과물로 남기를 바랐던 심산이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대붕제’라는 명칭이 민간에서 자연스럽게 사용되었다는 사실이다. ‘䳟’이라는 글자는 일반인에게 낯설고 읽기 어려운 반면, ‘鵬’은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들은 이해 가능한 언어로 이름을 재구성했고, 그 결과 구어에서는 ‘대붕’, 문자에서는 ‘대명’이라는 이중 구조가 형성되었다. 이는 지배 권력이 설정한 공식 명칭과 생활 속 언어가 서로 다르게 작동하는 전형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화천댐과 그 호수의 이름은 단순한 지리적 표기가 아니다. 그 안에는 거대한 토목 사업을 통해 자연을 재편하고, 그 위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려 했던 시대의 의도가 담겨 있다. 그리고 ‘대붕’과 ‘대명’이라는 두 글자의 간극 속에는, 상징을 차용하면서도 그것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으려 했던 미묘한 권력의 계산이 숨어 있다.
오늘 우리가 ‘파로호’라는 이름으로 이 공간을 부를 때, 그 푸른 물결 아래에는 한때 ‘하늘로 날아오르는 거대한 새’를 꿈꾸던 이름과, 그것을 은근히 숨기려 했던 또 다른 이름이 겹겹이 쌓여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금 화천에는 ‘파로호’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