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월요칼럼]폭력과 권력

김풍기 교수

인간의 수많은 행위의 목표 중에서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단연코 생존일 것이다. 인간 개개인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끝없이 분투하면서 살아간다. 어디 인간뿐이랴.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는 어떤 방식으로든 생존을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한다. 모든 존재는 단독자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생명의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나 개인이 생로병사를 겪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세계의 삼라만상과 관계를 맺으며 그 과정을 겪는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생존을 위해서 다른 생명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 당장 오늘 아침에 내가 식탁에서 만났던 것들을 떠올려보자. 내가 살아가기 위해 먹는 음식은 다른 생명의 희생을 토대로 요리된 것들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폭력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을 구성하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비록 원하지 않았다 해도, 내가 폭력을 행사하며 살아가는 것을 몰랐다 해도, 우리는 폭력을 행사하면서 동시에 다른 생명체의 폭력을 당하면서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 나의 생존을 지탱해 주는 나의 폭력은 부지불식간에 내재화되어 내 몸에, 우리 사회에 관습이나 법과 제도 등 다양한 모습으로 자리를 잡고 강고하게 작동한다. 그렇지만 우리 삶의 모든 것에 폭력이 간섭하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면 굳이 폭력을 논의할 이유가 없다.

육체성을 가진 폭력의 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키가 작고 약한 사람의 폭력이 크고 강한 사람의 폭력과 같은 강도를 가졌을 리 없다. 사람마다 다양한 차이를 가진 폭력은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서 일종의 계층 같은 것을 만들어 낸다. 깡패들 사회가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아무리 호형호제하면서 그들 나름의 의리를 자랑한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는 힘이 세고 싸움을 잘하는 사람이 깡패 사회에서 더 큰 권력을 확보한다. 깡패들의 힘이 공동체를 지배하는 순간 법과 제도는 힘을 잃고 동물적 감각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바뀐다. 무법천지란 법과 제도를 무시하고 오직 힘에 의해 공동체가 작동하는 것을 말한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이유는 법과 제도, 관습 등과 같은 것으로 사회를 유지해 나가기 때문이다. 육체적 힘은 다르지만 서로 간 합의를 통해 만들어내는 다양한 제도가 우리 공동체를 평화롭고 안정되게 해 준다. 공동체 구성원들의 동의와 합의에 의해 공동의 행동을 이끌어내고, 그것이 결국은 공동체의 질서와 공공선에 도달하는 힘이 된다면 그 힘을 우리는 권력이라고 부를 수 있다. 폭력이 육체적 힘과 강제력을 기반으로 하여 상대방의 의지를 굴복시키고 제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권력과 명확하게 다르다. ‘힘’을 행사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 과정과 목표에 도달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그렇게 보면 우리 공동체가 권력 행사를 정의롭게 하는 한에 있어서는 구성원들 간의 폭력 행사는 현저히 줄어든다. 법과 제도가 엄정하게 집행된다면 깡패들이 노골적으로 활개를 치지 못하는 것이 그런 이치다.

현대 시민사회가 구성되면서 우리는 국가 혹은 공동체의 공공선을 위해 선출된 정치인들에게 자신의 권력을 위임하였다. 권력을 위임받은 이들 중에는 정치인과 공무원이 큰 몫을 차지한다. 그들은 구성원들의 복리 증진을 위해 법과 제도의 범주 안에서 많은 일들을 대변한다. 이따금 나는 정치인들이 과연 정당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지 궁금해질 때가 많다. 자신이 가진 권력을 가지고 구성원들의 지지를 꾸준히 받을 수 있는 것은 그의 권력이 정당하다는 전제 하에서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입으로는 공동체의 공공선을 위해 일을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작 자신의 권력을 마구 행사하면서 법과 제도라는 이름의 폭력을 행사하는 수준에 이른다면 이들은 정치인이 아니라 정치깡패가 되는 셈이다. 선거가 한창 진행되는 와중에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정치깡패로서 정치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정치인의 탈을 쓰고 우리 옆에 서 있는 것은 아닌지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지켜보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의 임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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