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강원포럼]‘스승’ 실종 시대, 대학의 유효기간은?

임도빈 서울대 명예교수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30여 년 전, 초보 교수 시절 강의실에서 울려 퍼진 이 노래에 나는 당혹스러웠다. 따라 불러야 하는지, 어디에 눈을 두어야 할지 몰라 쥐구멍을 찾고 싶었다. 그것이 나의 교수 생활 첫 장면이다.

백지장 같은 아이들의 마음에 꿈을 그려줘야 할 초중고 교육은 ‘대입’이라는 단일 결승점 때문에 파산한 지 오래다. ‘진상’ 학부모에게 잘못 걸리면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교권은 추락했다. 스트레스에 찌든 교사들이 운동회, 수학여행, 학생 지도에서 발을 빼는 사이, ‘참된 인간’을 가르칠 스승의 자리는 좁아만 간다.

여기서 스스로 질문해 본다. 과연 대학교수는 ‘스승’인가? 유교적 ‘군사부일체’ 관념에선 그럴싸해 보이지만, 사실 우리 대학은 외제 수입품이 아니던가. 이미 머리가 굵은 성인이 된 학생들에게 ‘인간됨’을 가르친다는 것 자체가 연목구어(緣木求魚)일지도 모른다.

학생들 입장에서 보자. 젖먹던 힘까지 짜내 부모가 시키는 대로 시험 기계로 살아온 청춘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대학 강의는 지루하기 짝이 없다. 유튜브나 넷플릭스가 백배는 더 흥미롭고 감동적이다. 게다가 교수들은 초중고 교사보다 클래스가 달라 접근하기 힘든 존재다.

강의실 밖 세상은 더 잔인하다. ‘넘사벽’ 능력을 뽐내는 동기들 사이에서 학생들은 자존감 하락을 겪고, 그럴듯한 인턴 자리 하나 잡지 못해 가슴엔 먹구름이 가득하다. 선배들의 취업난 소식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학점 A+와 자격증 한 줄에 목숨을 건다.

상황이 이런데도 교수들은 자기 과목만 잘 들으면 인생 만사형통할 것처럼 자아도취에 빠져 있다. “나 때는 말이야”, “미국에서는 말이야”를 반복하고 가끔 훈장님 노릇도 한다. 학생들은 영혼 없는 강의에 과제만 폭탄으로 내주는 ‘학원 강사형’ 교수보다, 차라리 ‘학점 퍼주는 아저씨’를 더 간절히 원하는데 말이다.

한국의 대학들은 입시 과열이라는 ‘가만히 있어도 손님이 몰리는’ 독점 시장에 취해 시대 변화를 외면했다. 혁신의 관점에서 보면 삼성이나 하이닉스가 1등일 때, 대학은 단연 꼴찌다. 무엇을 가르칠지, 자신이 문제의 근원이라는 뼈를 깎는 고민보다는 등록금 동결 탓만 하며 허송세월한다. 지성을 대표해야 할 총장들은 지원금을 따내기 위해 정부를 기웃거리는 ‘로비스트’나 ‘전략적 구걸 관리인’으로 전락했다. 지금의 대학 위기는 MIT나 중국 대학과 같은 거액의 ‘돈벼락’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스승 없는 시대를 살며, 이제 대학 제도 자체를 개혁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 입시에 찌든 학생들을 볼모로 잡고 또다시 수년간 희망 고문을 하는 현 체제는 유효기간이 끝났다. 무전공 선발이니, 정시 비율이니, AI 학과 신설이니 하는 지엽적인 대책은 교육 개혁을 빙자한 기만일 뿐이다. 로봇이 육체노동을 대체한 데 이어, 인공지능이 지적 노동까지 빼앗는 시대가 아닌가.

이제 ‘챗GPT 잘 쓰는 법’ 같은 잔기술이 아니라, 인공지능 시대에 젊은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 근본부터 재설계해야 한다. 기대수명 100세 시대다. 차라리 대학 간판을 떼든지, 아니면 아예 전국민을 대학에 보내 교양과 취미를 즐기게 하는 ‘16년 의무교육화’를 추진하는 것은 어떤가. 이제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갈아엎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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