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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대경]강원도 최초 사액서원, 춘천 ‘문암서원(文巖書院)’의 복원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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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고전문학연구소 소장 한희민

 사액서원(賜額書院)은 국가(임금)가 서원 건립을 위한 재물과 공사 인력을 제공하여 완성한 것을 말한다. 즉 국립학교라는 의미이다.

 1651년(효종2) 춘천 유생 이탈(李梲) 등은 효종 임금에게 상소문을 올렸는데, “저희 고을에는 문순공(⽂純公) 이황(李滉)을 제사 지내는 <문암서원>이 있습니다. 지난 효종 신묘년(⾟卯.1651)에 많은 선비가 한목소리로 함께 상소하여 사액을 내려줄 것을 청했습니다”라는 내용이다.

 지금까지 춘천<문암서원>은 1610(광해군2)년에 춘천부사를 지낸 신식(申湜)이 건립을 시작하였다는 기문(記問)과 1614년 정경세(鄭經世)의 상량문이 전해지고 있어 건립연도는 확실하다. 그러나 <문암서원>의 사액연도는 1648(戊子)년이라 전해지고 있었으나 명확한 문헌 근거가 없었다.

서원이 공식적인 이름을 얻기 위해서는 예문관(藝文館)에서 3개의 이름을 갖추어 왕에게 올린 후, 낙점을 받으면 글씨를 잘 쓰는 사람에게 서사(書寫)하게 하여 행당 지역에 내려 현판(懸板)을 걸게 하였다. 이때 예조의 좌랑이 그곳에 가서 액호(額號)를 선포하게 된다. 액호를 선포하며 제사를 올릴 적에 제관은 도내의 수령으로써 사무를 처리하게 하는 엄숙한 의식을 행했다고 한다.

필자는 <문암서원>의 사액년도와 공식 명칭은 효종실록 권37에 기록한 “고 유신(儒臣) 이황(李滉)의 <춘천서원(春川書院)>에 대한 액호(額號)를 하사하였는데 예조의 청에 따른 것이다(賜故儒臣李滉 春川書院額號, 從禮曹之請也.)” 와 호주(湖洲) 채유후(1599~1660)가 쓴 「춘천서원사액제문」과 『문원보불』 권29 「문암서원사액문>을 발견하였다. 이를 근거로하여 사액년도는 1648(인조26)년, 공식명칭인 <문암서원>은 1651(효종2)년에 액호(額號)가 내린 것으로 확인하였다.

강원도 최초 서원은 1561년에 건립된 강릉의 <오봉서원>이다. 사액은 받지 못했으며, 대신 1624에 건립한 <석천서원>이 1660년 <송담서원>으로 사액을 받았다. 원주의 <칠봉서원>은 1612년에 건립하여 사액은 1673년에 받았다. 영월에 <장절서원>은 1685년 <육신사>.에서 시작하여 1828년에 <장절서원>으로 개칭되었다. 모두가 복원되어 지역의 교육시설 및 문화재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강원도 최초의 사액서원인 춘천 <문암서원>은 도청소재지임에도 불구하고 복원계획이 없다고 하니 안타까운 마음 감출 수 없으며, 또한 지역 출신 인들의 애국 정신을 기리는 <충열사(忠烈祠)>도 없이 매년 한국전쟁 위령탑에서 애국 행사를 치르는 것을 보며 선열들에게 송구한 마음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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