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선거관리위원회나 중국 등이 선거부정을 저질렀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현대사의 비극적인 부정선거 사례들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그 거대한 음모의 설계자와 실행자는 결코 선거관리기구나 중국, 북한 등이 아니었다. 오히려 서슬 퍼런 칼날을 쥔 대통령과 그 수하의 핵심 권력 기관인 내무부와 중앙정보부가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든 주역들이었다.
먼저 1960년 3·15부정선거를 복기해보자. 당시 부정선거를 기획하고 진두지휘한 곳은 투표와 개표를 관리하던 선관위가 아니라 정부의 심장부인 내무부였다. 최인규 당시 내무부 장관은 전국 시·군·구청장과 경찰서장들을 소집해 “법은 나중이고 일단 당선시켜야 한다”며 노골적인 ‘작전 지시’를 내렸다.
그들은 행정력을 총동원해 4할 사전 투표(투표가 시작되기 전, 이미 이승만과 이기붕을 찍은 기표지로 채워 넣어 투표함에 미리 담아두는 것)를 기획하고, 투표함 바꿔치기와 3인조·9인조 공개 투표라는 기상천외한 수법을 고안했다. 경찰은 투표소 안팎에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고, 공무원들은 여당의 선거 운동원으로 전락했다. 즉, 국가의 행정망 자체가 부정선거를 집행하는 거대한 기계로 작동했던 것이다. 이때 선거관리위원회는 권력의 압박 앞에 무기력하거나, 철저히 배제된 채 방관자에 머물러야 했다.
박정희 정부 시기로 넘어오면 부정선거의 양상은 더욱 치밀하고 고도화된다. 이때의 주도 기관은 국가 최고 정보기관인 중앙정보부였다. 중앙정보부는 선거의 ‘브레인’ 역할을 자처하며 막대한 정치자금을 조달하고, 야당 후보에 대한 공작과 정보 수집을 전담했다.
1971년 대선 당시, 중앙정보부는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삐라를 대량 살포하고 여론을 조작하는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선거의 승패를 설계했다. 투표함 자체를 건드리는 원시적 수법 대신, 행정 조직과 정보망을 활용해 유권자의 심리를 통제하고 야당의 손발을 묶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유신 체제 이후의 ‘체육관 선거’ 역시, 대통령이 선거 제도 자체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뜯어고친 ‘제도적 부정’의 극치였으며, 이 모든 과정은 권력 핵심부의 기획 하에 이루어졌다.
역사적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부정선거를 주도하거나 기획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선관위는 권위주의 정권 시절, 내무부와 경찰의 서슬 퍼런 감시와 압박 속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위축된 관리자’에 가까웠다. 부정선거의 주범은 언제나 ‘표를 얻어 권력을 연장하려는 당사자‘와 그 수하의 ‘물리력을 가진 권력 기구‘였다.
내무부는 행정권과 경찰권을 가졌고, 중앙정보부는 정보와 자금력을 가졌다. 이들이 합작하여 선거판을 짜놓으면, 독립성을 보장받지 못했던 선거 관리 기구는 사실상 그 결과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 속에 있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과거의 잘못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부정선거의 역사가 남긴 교훈은 명확하다. 권력 즉, 대통령과 정부가 행정 조직과 정보기관을 사유화하여 선거에 개입하려 할 때 민주주의는 무너진다. 선거 관리의 공정성을 감시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권력 기관이 제 본분을 잊고 선거라는 신성한 무대에 ‘기획자‘로 등장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견제하는 일이다.
강원도민을 비롯한 전국의 주권자들은 기억해야 한다. 투표함 속의 정의를 지키는 힘은 권력의 시혜가 아니라, 부당한 권력 개입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들의 서늘한 눈매와 참여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