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산중원로 대웅당 삼보(三寶·영월 사자산 법흥사 주지) 대종사의 영결식과 다비식이 29일 거행되며 스님의 마지막 가는 길을 장엄하게 배웅했다.
제4교구본사 월정사는 29일 경내 화엄루에서 대웅당 삼보 대종사의 영결식을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산중장으로 엄수했다. 지난 27일 영월 법흥사에서 법랍 61년, 세수 76세의 일기로 원적에 든 삼보 대종사를 추모하기 위해 수많은 사부대중이 모여 깊은 애도를 표했다.
명종 5타로 시작된 영결식은 송헌 청우 대종사, 연암 현해 대종사, 불영 자광 대종사, 도후 대종사, 호암 각수 대종사, 초암 현각 대종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삼귀의례, 영결법요(헌향·헌다·헌화), 행장소개, 추도입정을 거쳐 영결사, 추도사, 문도 추도문, 조사 등의 순으로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불영 자광 대종사는 영결사를 통해 “스님의 삶은 불교의 자존과 역사의 진실을 지켜내기 위해 부러질지언정 결코 꺾이지 않았던 위대한 구도와 투쟁의 연속이었다”며 고인의 굳건한 기개를 기렸다. 이어 월정사 조실 연암 현해 대종사는 추도사에서 “무거운 시대의 짐을 온몸으로 홀로 짊어지시느라 정작 스스로를 돌볼 겨를도 없이 너무도 급히 걸음을 옮기셨다”며 안타까운 슬픔을 전했다.
월정사 조실 연암 현해 대종사는 추도사에서 “나라의 부름에 젊음을 바쳐 얻은 상처도, 서슬 퍼런 국가 권력의 폭력 앞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았던 대쪽 같은 기개도, 그리고 50년 동안 피땀으로 모은 전 재산을 아낌없이 내어놓으신 바다 같은 자비심도, 그저 사바세계의 풍랑에 일어난 흰 포말에 불과하다”며 “적멸의 언덕에서 잠시 평안을 누리신 뒤, 다시 이 사바세계로 발걸음을 돌려저희의 갈 길을 다시 한번 밝혀달라”고 발원했다.
월정사 주지 퇴우 정념 스님은 문도 추도문에서 “스님이 걸어오신 길은 늘 거칠었으나 한 번도 구부러지지 않았고, 그 곧은 걸음이 이 도량과 이 시대에 남긴 것을 우리는 오래 기억할 것”이라고 다짐했으며, 조계종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 역시 조사를 통해 “불교의 명예를 지키고자 했던 애종 정신과 무소유의 숭고한 삶은 영원히 멸하지 않을 것”이라며 극락왕생을 발원했다.
대웅당 삼보 대종사는 1966년 16세의 나이로 오대산 월정사에서 탄허 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출가했다. 1970년 20세의 나이로 해병대원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해 작전 중 지뢰를 밟아 큰 부상을 입었으나 그 공로로 화랑무공훈장을 수훈했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한 10·27 불교법난 당시 억울한 간첩 누명을 쓰고 삼청교육대에 끌려가는 모진 고초를 겪었으며, 2005년에는 증언보고회에서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스스로 할복을 감행하는 결단을 내렸다. 이후 청와대 앞 단식 등을 통해 특별법 제정과 국가 차원의 진실규명을 이끌어내며 교계의 명예 회복에 일생을 바쳤다.
또 50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은 참전 상이연금 30억 원을 2020년 은사 탄허 스님의 유훈을 잇기 위해 종단 승려복지기금으로 전액 쾌척해 큰 감동을 주기도 했다.
영결식을 마친 후, 스님의 법구(法軀)는 인로왕번(引路王幡)과 만장, 사부대중의 이운행렬과 함께 다비장인 월정사 연화대로 옮겨져 다비식이 엄수됐다.
대종사의 49재 중 초재는 다음달 2일 월정사에서 엄수된다. 이어 2재(6월 9일)부터 6재(7월 7일)까지는 매주 화요일 스님이 생전 마지막까지 주석하던 영월 법흥사에서 진행되며, 마지막 7재는 7월 14일 다시 월정사에서 봉행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