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금요칼럼]노래방과 열린 합창의 차이

탁계석 예술비평가회장

우리가 즐겨 찾는 노래방 열기가 머지않아 국민합창운동에 옮겨붙을 태세다. 각지에서 많은 합창경연대회가 열리고 방송에서도 '남자의 자격' 에 이어 '청춘합창단'이 오디션을 마쳤다. 청춘합창단 응시자들의 제각기 사연을 보는 시청자의 눈시울이 뜨겁다. 그뿐인가. 가수가 되고 싶어 수만 명이 장사진을 치는 광경이 방송의 전파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유독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가무(歌舞) 민족의 원형질(DNA)을 타고난 때문이라고 본다. 일본에서 가라오케가 노래방 형태로 상륙한 이후 가공할 속도로 확산되었고 음주 후에 즐기는 국민 오락이 된 지 오래다. 숨 가쁜 산업화, 근대화를 거치면서 노래방은 스트레스 해소의 탈출구요 가장 수월한 사교 공간이었다. 그런 '노래방'은 한국인 특성인 '폭탄주'와 함께 '빨리빨리'의 속성을 가장 잘 빼닮았다. 시간과 경제 효율성을 잘 갖춘 소통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세상은 변해 G20 정상회의를 치렀고 국가브랜드를 생각하는 고급화, 선진화의 길목에 서서히 일상의 소비문화에도 변화가 엿보인다. 우리가 밖에 내놓은 한류문화의 반응에 스스로 놀라면서 자긍심과 함께 그동안 획일적인 것을 버리고 새로운 트렌드를 찾아야 할 때다.

우리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방(Room) 문화' 강국이다. 사교문화의 상징인 '살롱'이 들어왔지만 본질이 왜곡된 체 '룸살롱'이 되어 버렸다. 전화방, PC방, 찜질방, 키스방, 온통 방 천국이고 경찰과 담당 공무원들의 불법단속은 업주의 신출귀몰한 아이디어에 늘 박자가 늦다. 수준 높은 문화는 저급의 문화를 끌어안는 힘이 있는데 원인적인 처방은 않고 단속만 해서 될 일인가. 술 없이는 속마음의 대화가 쉽지 않은 경직성 역시 우리의 굳은 얼굴 표정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개인의 독창성에 비해 남의 의견을 듣고 협력하는 네트워크 능력이 떨어진다. 그러나 가까운 일본은 솔로(Solo)엔 약하지만 사람이 모여야 하는 합창(Chorus)은 강해 수적으로도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많다.

이처럼 '열린 공간'보다 '폐쇄 공간'에 익숙한 방 문화는 장점도 있지만 단점이 더 많다. 모든 정보를 공유하는 스마트폰 세상으로 가면서 우리의 밀폐된 방 문화의 욕망을 대체할 새로운 프로그램들이 필요하다.

양질의 문화는 체험의 산물이고 배우지 않으면 즐길 수 없다. 학창시절 합창반을 못 잊어 직장인이 되어서 다시 동아리를 결성하는 것을 보면서 어린이와 청소년 교육의 중요함을 새삼 느꼈다. 사실 술에 취해서 부르는 노래보다 하모니 합창을 해보면 이 멋진 노래를 왜 모르고 살아 왔을까 후회한다. 합창은 소리, 음 빛깔을 지휘자가 컨트롤하면서 튀는 소리를 정제시켜 아름답게 가공한다. 우리 사회가 선진화되려면 자기중심 구조에서 구성원의 하모니를 만들어 내는 시스템 변화가 필요하다. 정치가들도 단상을 점유하거나 해머로 문을 따는 돌격대 이미지 대신 위트와 유머의 세련된 멋을 풍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필자는 외환위기(IMF) 때 실의에 빠진 아버지들을 위해 '아버지합창단'을 창단했는데 지금 10개가 넘는 합창단이 아름다운 사회봉사를 하고 있다.

히틀러는 전후 독일의 통합을 합창으로 이뤄냈지만 우리는 노래방 가수들이 합창 공간으로 이동한다면 개인과 사회가 밝아지고 튼튼한 문화강국이 되지 않겠는가. 공공의 유휴 공간을 활용하고 밤엔 쉬는 예식장도 합창을 펼칠 멋진 공간이 아니겠는가.

탁계석 예술비평가회장

<한국지방신문협회 공동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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