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진의학 배우러 한림대춘천성심병원으로 연수 온
몽골 의사 빌군, 운두랄씨
지난해 몽골에서 의사 자격을 취득한 초보(?)의사 운두랄(Munkhsaikhan Undral·여·27)씨는 아직 춘천이 낯설다. 한림대춘천성심병원으로 연수를 온 지 열흘밖에 안됐으니 그럴 만도 하다.
운두랄씨는 오전 7시면 어김없이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출근 시간까진 두 시간이나 남았지만 서둘러 기숙사를 빠져나와 병원 응급실로 향한다. 선진의료기술을 배우러 온 만큼 낭비할 시간이 없다.
오전 8시부터는 류머티즘을 전공하는 교수와 환자들을 만난다. 병원에서 말하는 '라운딩' 시간이다.
몽골이나 춘천이나 병원의 공기나 환자들의 표정은 다를 바가 없다.
바쁘게 환자들을 만나다 보면 벌써 점심시간이다. 몽골에서 온 동료들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잠깐의 휴식시간이지만 식사를 마친 후 곧장 응급실을 돌아본다.
오후엔 외과 수술 스케줄이 많다. 함께 수술을 참관하다보면 하루빨리 직접 환자를 돌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오후 6시가 되면 퇴근이다. 직장인이라면 하루 종일 기다렸을 시간이지만 운두랄씨의 일상은 더욱 바빠진다.
오늘 보고 배운 걸 정리하고 교수가 내준 숙제를 하면 저녁 시간도 모자라다.
4년차 의사인 빌군(31·Ganbold Bilguun)씨는 벌써 춘천에 온 지 반년이 넘었다.
여름에 춘천으로 온 빌군은 매일 비가 오고 습한 날씨가 참 견디기 힘들었다. 초원의 나라 몽골의 건조한 날씨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춘천이 따뜻하고 편하다.
동료들과 가끔 한잔씩 하는 소주도 익숙하고 시끌벅적한 한국의 회식문화도 즐겁다. 사실 몽골의 독주에 익숙한 빌군은 소주가 조금은 싱겁다(?). 그는 한국의사보다 주량이 훨씬 세다.
당초 9개월의 짧은 연수를 생각하고 온 춘천이었지만 이곳에서 박사과정을 밟기로 계획을 바꿨다. 2년이 될지 3년이 걸릴 지 모르지만 춘천에서 배운 의술이라면 몽골로 돌아갔을 때 동포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 몽골 익숙하면서도 멀게만 느껴지는데, 춘천엔 어떤 계기로 오셨죠
빌군:“의대 선배가 먼저 한림대춘천성심병원에서 연수를 받았어요. 선배가 추천을 해줬죠. 그 선배는 춘천에서 배워 온 의술로 몽골에서 큰 성공을 거뒀죠. 부러웠어요.”
“한국 강원도의 큰 병원에 가면 전문적인 외과지식을 배울 수 있다고 했어요. 사람들도 따뜻하고 재밌다고 했어요”
운두랄:“전 몽골국립병원에서 근무중이에요. 2009년 의대를 졸업한 후 지난해 정식의사가 됐죠. 몽골에도 많은 환자가 류머티즘(관절 및 근육, 인대, 인체 섬유조직 등에 침투해 염증 및 장애를 일으키는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어요”
“몽골국립병원에도 처음으로 관절질환 전문의료센터가 설립되는데 한국의 진료능력이 가장 앞서 있죠. 몽골국립병원장님이 몽골을 방문한 한림대춘천성심병원 의사에게 직접 저를 데려가도록 부탁했어요.”
- 직접 경험해 본 강원도는 어때요
빌군:“너무 많은 것을 배우고 있어요. 저는 춘천에서 계속 공부하기 위해 공인영어시험도 치렀죠. 사실 처음 한국에 간다고 했을 때는 동료들이 많이 만류했어요. 서울에서 많이 연수를 받는데 몽골 의사들이 갈 수 있을 만한 곳은 작은 병원들이고… 사실 별로 배울 게 없을 수 있어요. 하지만 운좋게 강원도의 큰 병원에서 연수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왔어요. 이곳에서 경험한 의료진이나 장비, 병원 시스템은 몽골과 비교할 수 없어요.”
운두랄:“전 아직 경황이 없어서… (웃음, 운두랄은 아직 춘천에 온 지 열흘 밖에 안 됐다.) 처음 춘천에 도착했을 때 조용하고 잘 정비돼 있는 춘천의 시가지 풍경이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사실 울란바토르(몽골의 수도)는 너무 복잡하고 정신 없어요.”
- 사람들과 어울리는 건 어때요. 술도 가끔 하나요
빌군:“재밌어요 회식에 여러번 초대 받았죠.”, “몽골에선 보드카 등 워낙 독한 술만 마시다 보니 소주는 참 맛있어요.”
운두랄:“아직 환영파티 같은 자린 없었어요. 워낙 바쁘고 경황이 없어서… 왠지 기대가 되네요.”
- 머나먼 나라 한국, 그리고 강원도까지 오게 됐을 땐 각오나 다짐도 남다르겠어요
빌군:“한국에서 많은 환자를 접하고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4개월만에 복강경수술(복부에 0.5~1.5㎝ 크기의 작은 구멍을 여러 개 내고, 그 안으로 비디오 카메라와 각종 기구들을 넣고 시행하는 수술 방법)을 모두 마스터했어요. 이젠 관절경수술(관절을 완전히 절개하지 않고 직경 1.7~7㎜ 가량의 내시경을 이용해 관절 속을 들여다보는 수술방법)을 배울 차례죠.”
“몽골의 열악한 의료여건 상 아직 복강경이나 관절경을 시술할 수 있는 의사가 없어요. 이 수술을 이용하면 고통도 덜할 뿐더러 수술상처도 작고 빨리 치유될 수 있죠.”, “춘천에서 2~3년간 더 공부하며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몽골에 널리 전파하고 싶어요.”
운두랄:“올해 몽골에 최초로 관절질환 전문의료센터가 설립되면 많은 일을 하게 될 것 같아요.”, “강원도에서 배운 경험과 지식을 활용해 관절질환 전문의료센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싶어요.”
- 가족 생각 많이 날텐데 어떻게 견뎌내세요
빌군:“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가장 힘든 점이죠. 현지에 7살난 아들과 2살 된 딸이 있어요.”, “그나마 스마트폰이 있어서 매일 화상통화를 하며 그리움을 달래요. 9개월 일정으로 왔다가 몇 년을 더 머물게 됐으니 가족들한텐 미안하죠.”
운두랄:“저도 올해 2살 된 딸이 있어요, 같이 있어주지 못해서 항상 미안해요 아직 신혼이라 남편도 많이 보고 싶어요.”, “저 역시 매일 인터넷으로 화상통화를 하면서 견뎌내고 있어요.”
선진의학을 접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이역만리까지 오게 된 그들은 강원도의 병원들에겐 멀리 세계를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하기도 한다.
수년 전부터 몽골 의사들의 연수를 적극 추진 중인 한림대춘천성심병원엔 현재 4명의 몽골 의사들이 저마다의 목표를 갖고 연수를 받고 있다.
이미 연수를 마치고 돌아간 3명의 몽골 의사는 몽골에 여태껏 없었던 의료기술을 전파하는 것은 물론 현지에서 수술이 어려운 경우 강원도에서 원정진료를 받도록 권유해 생각지 못했던 효과도 낳고 있다.
몽골 현직 대법관인 사란투야(59)씨는 무릎 연골이 다 닳아 없어져 2년간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고 걷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몽골엔 인공관절수술 기술이 없어 고통을 감내해 왔지만 우연히 한림대병원에서 2년간 연수를 받았던 의사 오논발(33)씨의 권유로 지난해 춘천에서 수술을 받았다.
사란투야씨가 돌아간 후 몽골 보건복지부 장관은 병원에 직접 전화를 걸어 '대법관을 통해 전해들었다. 감사하다'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몽골 경찰청장의 아들과 몽골의 한 광산재벌도 지난해 자신의 전용기를 타고 입국해 한림대춘천성심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2010년 춘천을 방문해 진료를 받은 몽골 환자는 11명으로 2,400여만원의 수익을 올렸으나 지난해의 경우 2배가 넘는 24명이 진료를 받아 6,000여만원의 진료수익을 올렸다.
또 춘천에서 지난해까지 연수를 받은 몽골 의사 마이다씨는 돌아가자마자 연수경력을 인정받아 몽골국립병원 센터장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이상수 한림대춘천성심병원 기획실장(정형외과 교수)은 “앞으로 몽골은 물론 키르기스스탄 등 외국인 의사들이 연수할 수 있는 기회를 꾸준히 제공할 것”이라며 “연수 의사들을 활용하면 외국인 환자들을 강원도로 유치할 수 있고 외국인 환자들의 불편도 줄일 수 있어 서로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기영기자 answer07@kwnews.co.kr
사진설명=◇한림대 춘천성심병원으로 연수 온 몽골 의사 빌군(사진 오른쪽), 운두랄씨가 의대 도서관에서 잠시 긴장을 풀고 있다. 빌군씨는 춘천에서 배운 의술로 몽골에서 큰 성공을 거둔 선배의 추천으로, 운두랄 씨는 근무 중이던 몽골국립병원 원장이 몽골을 방문한 성심병원 의료진에 부탁해 각각 춘천에 왔다. 이 두 명의 남녀 의사들은 춘천의 의료시스템뿐만 아니라 풍경과 사람 인심이 너무 좋아 오랫동안 체류했으면 좋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김효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