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대법원에서 인신보호법에 관한 세미나가 열렸는데, 나는 모 법원 형사 '제1부'에 근무한다는 이유로 형사부 판사들을 대표해 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었다. 나는 인신보호법이라는 법 자체에 대해서도 생소했던 터라 세미나 주제보다는 이후 있을 회식에 더 관심이 있었다. 한 판사의 발표를 듣기 전까진 말이다.
그 판사는 '인신보호법은 그동안 정신병원 강제입원 등이 법원의 판단 없이 인신을 제한하는 것임에도 마땅한 구제수단이 없어 인권의 사각지대라는 지적을 받아온 것에 따라 피수용자 등이 법원에 그 구제를 청구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기 위하여 2007년 12월 21일 제정된 법'이라고 설명하면서, 남편의 재산을 빼앗기 위해 밤중에 구급차를 불러 남편을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킨 한 여인의 이야기와 가족에 의해 정신병원에 강제로 수용된 한 남자가 '나는 미치지도 않았는데 강제로 입원 당했으니 제발 나를 여기에서 꺼내 달라'는 내용의 종이비행기를 접어 매일 창문 밖으로 날려 보낸 이야기를 했다. 그때 나는 가족을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키는 실태를 고발한 프로그램을 TV에서 본 기억이 떠올랐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정말 그런 일이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판사의 말을 들으니 문제의 심각성이 피부에 와 닿았다.
나는 법원이 피수용자의 구제를 넘어 정신병원 등 수용시설의 관리 및 피수용자의 처우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 번 정신병원에 수용되면 보통 장기간 심지어 무기한 수용되고 있는 실정인데, 일정 기간을 넘긴 피수용자들에 대해선 계속 입원할 필요성이 있는지에 관해 법원이 이를 판단해야 한다고 본다(이를 위해선 현재 시행 중인 정신보건법의 개정이 필요하다). 정신병원에서 행해지는 약물치료와 관련하여서도 부작용이 적은 약물은 대부분 고가로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약효는 크지 않고 오히려 부작용이 더 큰 저가의 약물들이 사용되고 있는 실태라고 하는데 이에 대한 개선도 필요하다.
뜬금없는 얘기로, 부모님이 계신 남양주에 강아지가 두 마리 있었다. 하나는 15살이 넘은 요크셔테리어 키키고, 또 하나는 5살 된 포메라니안 보리인데, 키키가 노망이 걸렸는지 자꾸 자기 오줌을 먹는다는 어머니의 말을 들은 후로는 남양주 본가에 가면 보리만 귀여워해주고 키키가 다가오면 슬슬 피하고 멀리했다. 그 후 언제부턴가 키키는 점점 살이 빠져 급기야 뼈만 앙상하게 남았고, 몇 달 후 어머니로부터 키키가 간밤에 하늘 나라로 갔다는 연락을 받았다. 얼마 후 어머니는 한 지인으로부터 나이가 많은 노견은 이빨이 없거나 약하니 노견용 사료를 따로 사 물에 약간 불린 후 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무언가 떠오른 듯 탄식을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키키가 이빨이 다 빠져 딱딱한 사료를 씹지 못한 것 같다는 것이다. 아마도 키키가 먹지 못한 사료까지 보리가 다 먹은 것이리라. 그러면서 어머니는 키키의 그런 딱한 사정을 알았더라면 그렇게 굶어 죽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눈물을 흘리셨다.
내가 속한 법원은 영월, 정선, 평창, 태백을 관할구역으로 한다. 우리 주민들은 대한민국 그 어느 지역보다 순박하고 선량하다. 하지만 계속되는 고령화로 인해 치매에 시달리거나 노인요양병원에 계신 분이 많다. 이빨이 없어 딱딱한 사료를 먹지 못함에도 말 못하는 동물이라 이를 하소연할 수 없었던 키키, 정신병원 창문 너머로 애타게 종이비행기를 날려야만 했던 남자를 생각하면 이곳에 근무하면서 요양병원 봉사활동 한 번 가지 못한 내가 부끄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