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짝폴짝 범이, 으랏차차 곰이.' 강원도의 새로운 마스코트인 범이와 곰이는 2018평창동계올림픽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수호랑·반다비의 2세다. 2000년 탄생해 20년간 강원도의 마스코트였던 반비의 은퇴를 앞두고 도는 수호랑·반다비를 공식 마스코트로 쓰고 싶어했다. 하지만 올림픽 마스코트에 대한 모든 권리를 보유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강원도의 수호랑·반다비 사용을 불허했다. 결국 강원도는 2018년 7월 새로운 마스코트 개발에 착수했다. 역대 올림픽 최고의 마스코트로 꼽히는 수호랑·반다비의 2세를 만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막중한 임무는 한영선 강원도 홍보기획담당과 최낙영 주무관, 김주임 주무관에게 주어졌다.
올 3~4월 감자 판매 이벤트 홍보 영상 등장
“인형 판매해 달라” 민원 쇄도… 관심 뜨거워
1년간 수많은 아이디어 회의·시행착오 거쳐
제작 당시 초기 시안만 무려 50개 이상 검토
현재 모습 대국민투표서 68.8% 압도적 몰표
“지역·올림픽 역사 잘 담았다는 평 큰 감동”
■감자 열풍 타고 폭발적 인기
수호랑·반다비의 2세 범이와 곰이는 지난해 9월 탄생했다. 단순하지만 귀여운 용모, 잔망스러운 행동은 수호랑·반다비를 빼닮았다는 평이 나왔다. 하지만 지자체 캐릭터라는 특성 탓에 일반에 알려지기 어려웠고 인기를 끄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올 3~4월 범이·곰이가 전국구로 떠오를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강원도가 감자 한 상자를 5,000원에 판매하는 이벤트가 전국적인 열풍을 불러일으키자 홍보영상에 등장했던 범이와 곰이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이에 강원도청에는 범이와 곰이 인형도 판매해 달라는 민원이 쇄도했다. 한영선 담당은 “감자만큼 범이·곰이 인형의 판매 여부를 묻는 사람이 많았다”며 “주변에서도 강원도가 홍보용으로 제작한 범이·곰이 인형이나 핀 등을 구해 달라는 요청이 많은데 60여개 상품의 상표권이 출원·등록 절차를 밟고 있으며 도내 기업에게는 사용료를 무료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범이·곰이 대국민 투표, 예상 못 한 반전
범이·곰이를 새로 제작하기로 한 후 한 담당을 비롯한 직원들의 가장 큰 고민은 수호랑 반다비와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가'였다. 2018평창올림픽의 유산인 수호랑·반다비를 계승하지만 자칫 '짝퉁'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현재 범이·곰이의 모습은 1안이 아닌 2안이었다. 당초 채택된 1안은 수호랑·반다비와 비교했을 때 이목구비가 좀 더 뚜렷해 사람을 닮은 디자인이었다. 1세대 강원도 캐릭터인 반비와도 닮은 모습이었다. 반면 2안이었던 현재의 모습은 눈·코·입이 점과 선으로 간략화된 형태였다. 1안이 다소 전형적인 디자인이라면 2안은 수호랑·반다비와 너무 닮아 있다는 점이 걸렸다. 결국 홍보기획팀 직원들은 고심 끝에 대국민 투표를 통해 결정키로 했다.
1안과 2안을 두고 투표를 시작하자 높은 관심과 함께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수호랑·반다비 팬클럽에서는 강원도에 수호랑·반다비를 닮은 2안이 반드시 채택될 수 있도록 편지를 보내는 등 로비(?)를 시작했다.
팬클럽에서는 디자인 개발사에 수호랑·반다비와 꼭 닮은 캐릭터를 만들어줘 고맙다는 편지도 보냈다.
결국 전국 1만7,779명이 참여한 대국민 투표에서 2안이 68.8%의 압도적인 표를 받았다. 분석 결과 수도권과 20~30대 젊은 층에서 2안에 몰표를 줬다. 20년 전 1세대 강원도 캐릭터 반비의 탄생 당시에도 실무를 맡았던 최낙영 주무관은 “반비 역시 강원도를 대표하는 캐릭터성을 갖춰 완성도가 높았지만 이목구비가 뚜렷한 디자인은 인형이나 탈을 만들기 어렵고 굿즈를 만드는 데도 한계가 있다”며 “단순한 지금의 범이·곰이의 디자인도 간결하고 상품화가 용이한 디자인이라는 점에서 국민이 현명한 선택을 해준 것 같다”고 말했다.
한 담당 역시 “부모가 뛰어나면 자식이 부담스러워하는 것(웃음)처럼 제작 당시 고민이 많았다. 범이와 곰이의 초기 시안만 50개 이상 검토했다”고 떠올렸다.
■춤춰 봐요 범이, 노래해요 곰이
요즘 캐릭터나 마스코트는 다양한 방면에서 활용된다. 단순히 호감 가는 디자인만으로는 대중에게 어필하지 못한다. 범이와 곰이에게도 역시 전용 주제가가 있다. '폴짝폴짝 범이 으랏차차 곰이'로 시작하는 중독성 강한 멜로디와 깜찍한 율동은 올 2월 평창평화포럼에서 첫선을 보여 국내 언론은 물론 외신의 큰 관심을 받았다. 이 노래는 강원도청 공식 유튜브 영상에 '브금'(배경 음악을 뜻하는 BGM을 소리 나는 대로 조합한 인터냇 용어)으로 자주 등장한다. 입에 착 달라붙는 범이와 곰이라는 이름도 홍보기획팀 내부에서 고심에 고심을 거듭해 탄생했다. 처음에는 평화랑과 번영이 등 다소 관(官)의 느낌이 강한 이름이 거론됐다. 하지만 친근하면서도 외국인이 부르기도 쉬워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범이·곰이로 낙점됐다. 범이·곰이 주제가와 율동 제작을 맡았던 김주임 주무관은 “친근감과 범이의 활달하고 곰이의 믿음직한 성격, 강원도의 상징이라는 점에 주안점을 두고 제작했다”며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고 반응도 좋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반비와 범이·곰이 진짜 부모 직원들에게도 박수를
홍보기획팀 직원들은 물론 강원도청 직원들이라면 누구나 그동안 정든 반비의 은퇴를 가장 아쉽게 생각한다.
1980년대 설악산 반달가슴곰이 강원도의 상징으로 처음 채택됐고 1996년 강원도에서 열린 제77회 전국체전에 달곰이라는 강원도정 역사상 최초의 마스코트가 탄생했다. 달곰이는 2000년 반비라는 캐릭터로 재탄생했다.
반비는 이후 20년간 강원도의 마스코트로 제 역할을 다했다. 지금도 도정 곳곳에 흔적이 남아 있는 반비의 은퇴는 직원들에게는 아쉬운 일이기도 하다. 특히 반비의 제작에도 관여했던 최낙영 주무관은 누구보다 아쉬움이 크다. 최 주무관은 “반비는 오래전 캐릭터이다 보니 범이·곰이에 비해 상품화가 어렵고 대중성에도 한계가 있지만 현재 관점에서 봐도 디자인이나 이름이 완성도가 높다”며 “반비의 은퇴는 아쉽지만 범이와 곰이가 탄생하는 데 많은 사람의 노력이 있었던 만큼 반비 대신 더 많은 사랑을 받길 바란다”고 말했다.
범이와 곰이를 수호랑·반다비의 2세라고 부르지만 사실 범이·곰이의 진짜 부모는 1년간 수많은 아이디어 회의와 시행착오를 거친 홍보기획팀 직원들이다.
한영선 담당은 “강원도의 상징을 만드는 일을 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낀다. 범이와 곰이가 강원도와 올림픽의 역사를 잘 담아냈다는 평을 들었을 때 큰 감동을 느꼈다”고 말했다.
최기영기자 answer07@kw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