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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권혁순칼럼]재난지역에서 지도자의 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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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8일 중부지방 115년 만에 기록적인 폭우
원주 노부부 실종, 20일 지나도록 찾지 못해
정치인 현장 방문, 주민 위로는커녕 '공분'

벌써 20일이 지났다. 지난 8일 중부지방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다. 115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가 내려 지하차로는 물론 지상 도로까지 완전히 마비됐다. 서울 신림동에선 40대 발달장애인 언니와 그 동생, 동생의 10대 딸이 반지하 주택에서 대피하지 못해 하늘나라로 향했다. 이번 폭우는 서울 강남을 비롯해 경기 화성, 광주, 강원 춘천, 원주 등 중부지역 전체에 피해를 입혔다. 특히 원주에서 벌통을 살피러 간 노부부가 실종됐다. 지난 9일 오후 5시께 80대 A씨와 부인 70대 B씨의 자녀로부터 “부모님이 귀가하지 않는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A씨 부부는 전날 노림리 섬강 인근 양봉업을 위해 부론면 농지를 찾았으며, 현재 A씨의 차량은 발견됐으나 평소 끌고 다니는 캠핑 트레일러는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과 소방 당국은 A씨 부부가 급류에 휩쓸려 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인력 80여명, 장비 16대를 투입해 수색 중이지만 아직까지 진척이 없다. 이번 폭우로 늘 그래 왔듯이 현장에 달려간 정치 지도자가 많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일가족 3명이 숨진 신림동 반지하 주택을 찾았다. 그렇지만 재택근무가 논란이 됐다.

국민의힘이 10일 수해 복구 자원봉사에 나섰는데 이 과정에서 김성원 의원이 “사진 잘 나오게 비가 더 왔으면 좋겠다”고 말해 수재민들의 가슴에 피멍이 들게 했다. 유례없는 물폭탄으로 처참하게 파괴된 삶의 터전을 떠나 임시 거처에서 생활해야만 하는 이재민이 발생한 현실을 잊지 않고서는 보일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행태다.

김 의원은 경솔하고 사려 깊지 못했다고 사과했지만 야당을 비롯해 여론의 질타가 쏟아졌다. 지도자들의 재난지역 방문은 고통받고 있는 주민 위로는 물론 소통의 장이 돼야 한다.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했을 때 부시 미 대통령은 현장으로 달려가지 않고 네브래스카로 피신했다. 하지만 곧 잘못된 것을 알아차리고 뉴욕의 재해지로 달려가 확성기를 잡았다. 구조와 복구 작업을 하고 있는 군중을 향해 막 연설을 시작하자 멀리 떨어져 있던 소방대원 하나가 “무슨 소리인지 안 들린다”고 외쳤다. 그 때 부시는 “난 당신의 소리가 잘 들린다” 그리고는 “세계의 모든 사람이 당신의 소리를 듣고 있다. 그리고 이 빌딩을 폭파한 자들도 곧 우리의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즉흥 연설은 CNN에서 되풀이 되면서 많은 국민에게 감동을 줬고 그 직후 갤럽의 여론조사에서 최고로 존경받는 인물로 부상한다. 부시는 소방대원의 목소리를 상징적인 목소리로 바꿔 놓아 위기를 역전시켰다. 국내에서도 대형사고가 터지면 유력 정치인들이 현장을 잇따라 방문한다. 그러나 큰 울림을 주기는커녕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더 많았다. 참사 현장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지각 없는 행태는 국민의 공분을 샀다. 피격된 천안함 병사를 구하러 바다에 뛰어들었다 순직한 고(故) 한준호 준위 장례식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유가족을 위로하고 고통에 공감해야 할 지도자들의 현장 방문이 오히려 국민과의 간극을 더 벌려 놓았다.

지금도 수해 현장에는 전국에서 몰려든 수많은 자원봉사자가 복구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지난 광복절 연휴에도 전국에서 약 5,000명이 이웃의 고통을 함께 나눴다.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다. 경찰과 소방 당국은 아직도 수습하지 못한 시신을 찾기 위해 며칠째 강바닥을 샅샅이 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 비 좀 더 왔으면 좋겠다는 말이 이들에게는 어떻게 들렸을지, 재난 현장에서 지도자의 처신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산하(山河)가 홍수에 떠내려가도 구름 위에는 비가 오지 않는다. 정부와 정치지도자들이 기후변화가 부르고 있는 재난 대책을 장기적으로 세워 나가야 하지만, 그보다 더 급하고 중요한 것은 낮은 곳으로 내려와 국민의 눈높이에서 민생을 다시 보는 노력을 스스로 하는 일이다. 재난 현장을 형식적으로 방문하고 사진 찍는 것으로 그치면 ‘언제나 쾌청한’ 구름 위의 하늘만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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