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문화단상]기원전부터 시작된 걷기운동

김성일 전 강릉원주대 교수

출퇴근을 하면서 온통 적갈색으로 물든 작은 공원이나 숲 근처를 지나게 되면 주변을 잠시라도 걷고 싶은 충동이 들 것이다. 울긋불긋한 숲과 낙엽이 수북히 쌓인 오솔길을 잠시나마 걸어본 적이 언제였던가? 특히 가을철의 산책은 화려한 단풍으로 풍부한 감성을 자극한다.

우리는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자연에 저절로 이끌리게 되어 있다. 초록색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 애정이 꽃이나 나무, 정원을 좋아하는 습성으로 나타난다. 자연은 안정감과 편안함을 가져다주며 지친 마음을 위로해준다. 자연환경은 공원이나 녹지만이 아니라 실내의 화분이나 식물이 그려진 그림일지라도 스트레스와 긴장을 풀어주는 효과가 있다.

심신을 최적의 상태로 유지하거나 건강 회복을 위해서는 자연과의 접촉이 필수적이라고 한다. 산책을 겸한 꾸준히 걷는 활동은 다리와 허리의 근력을 증대시키고, 혈액순환을 촉진함으로써 심장 기능을 개선하며, 노화로 인한 뇌의 해마 축소를 방지하여 기억력 개선과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 기원전 400년에 히포크라테스는 “걷기는 사람의 가장 좋은 약”이라고 하였다. 과잉행동장애가 있는 아동이 녹지대를 20여 분만 걸어도 행동이 비교적 안정되고 집중력도 상승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산책과 같은 신체적 활동은 추상적 사고와 서로 맞물려 있다. 일상적 표현에서도 이런 개념이 반영되어 있다. ‘머리를 굴리다’ 또는 ‘사고의 흐름’이라는 표현은 움직이는 동작을 연상한다. 실제로 생각은 신체활동의 영향을 받는다. 골똘히 생각에 몰두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방안을 서성이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산책은 명확한 사고를 할 수 있게 해주며, 어떤 구상이나 암기를 할 때도 도움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와 그 제자들을 ‘소요학파’(逍遙學派)로 부르는 것도 그들이 함께 산책하면서 강의하고 토론했기 때문이다. 칸트, 괴테, 하이데거와 같은 철학자들, 베토벤, 쇼팽, 차이코프스키와 같은 음악가들, 찰스 디킨스와 같은 소설가들도 산책을 통해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철학자 니체도 “걷는 사람의 발끝에서 생각이 나온다”고 했다.

주말에 가을철 단풍 감상을 위한 명산 순례나 등반을 시도하는 것도 좋지만, 시간 여유가 없으면 주중에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도심의 빌딩 숲속을 벗어나 근처의 작은 공원이라도 걷는 기회를 가져 보자. 아무 생각 없이 높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천천히 걷다 보면 업무나 인간관계로 인한 갈등과 짜증, 분노가 누그러지거나 눅눅했던 기분이 상쾌해지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혼자 조용히 걷는 시간에 정신없이 분주하게 보내는 일상을 돌아보며 완급을 적당히 조절하는 순간을 갖게 되고 시름과 잡념도 날려보내게 될 것이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또 하나의 상처, ‘강제징집과 녹화사업’

납북귀환어부 간첩조작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