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월요칼럼]정감 어린 강릉말

연호탁 가톨릭관동대 교수

강릉에 온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늦은 봄날 저녁이었다. 홍제동 골목길을 함께 걷던 입사 동기 곤 교수가 뜬금없이 지약을 먹었는가 물었다. 강릉 사람드르는 권씨를 곤씨라 발음한다. 그리고 –들은의 경우 흔히 ‘-드르는’이라고 말한다. 깜짝 놀라 이 동네 사람들은 평소 쥐약을 먹느냐고 물었다. 필경 내 목소리는 떨렸을 것이다. 눈치를 챈 강릉산 곤씨가 해명을 했다. 저녁 식사 했느냐고 물은 것이라기에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갈구지 말자!’

퇴근길 학교 통근버스에서 바라본 어느 공기업 마당 입간판에 써놓은 글귀였다. 다섯 글자, 짧은 두 단어지만 임팩트가 강해서 내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당시에는 이 말을 강릉이라는 지역 공동체 내에 갈굼의 풍조가 만연해 있다는 암시로 받아들였다.

‘갈구다’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을 약삭빠르고 묘하게 괴롭히거나 못살게 굴다.’다.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화자의 언행이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한다는 점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호의적으로 말해 누군가를 갈구고, 어떤 일이나 사람에 대해 가십을 늘어놓는 것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일상적인 즐거운 오락이다.

어떤 이는 자신의 말이 결코 상대를 화나게 하거나 괴롭힐 의도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고 강변한다. 반가움이나 우정의 표시로 하는 말을 갈구는 것으로 치부하면 사람 간 우호적 대화는 고갈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억울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원래 그런 걸 어타나요(어떻게 하나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개선을 말하는 사람의 조언을 받아들일 의향이 없다고 봐야 한다. 본인들은 친근감의 표시로 건네는 말이 상대방의 가슴에 상처를 낼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말은 바람직한 인간관계, 소통의 기능으로부터 멀어진다.

그러나 내 경험상 강릉의 경우는 좀 다른 것 같다. 햇살이 뜨거워 양산을 쓰고 있는 막역한 사이의 친구 부인에게 ‘그 얼굴에 양산을 써서 우터할라고?’와 같은 말을 예사롭게 하는 강릉 친구가 있다. 쓸데없는 말을 한다는 내 힐난에 그는 오히려 의아해했다. 오랜 만에 보는 나에게도 영감탱이가 어울리지 않게 청바지를 입는다는 말로 반가움을 표시한다. 그는 성실하고 정의로운 좋은 사람이다. 그런데 친한 사람에게 관심을 표하는 방식이 투박하다. 게다가 강릉 토박이들의 말투는 어조가 강하고 억양이 센 편이다. 그리고 강릉말에는 표준어와 다른 이색적인 어휘가 많다.

수십 년 강릉살이 끝에 이제서야 나는 강릉사람들의 투박하나 다순 속을 안다. 농담처럼 멋적게 던지는 말 속에 담긴 우애를 잘 안다. 가끔 강릉말이 거칠다며 불평을 하는 외지인들이 있다. 그들은 낯선 말투에 당혹해하기도, 강릉 스타일의 힘찬 어조에 일순 얼떨떨해하기도 한다. 그런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익숙해지면 강릉사투리가 더없이 구수하고 정감어린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봄날 같은 가을 어느 날 강릉살이 2년 정도 되었다는 어떤 사람을 만났다. 10월 중순치고는 날씨가 데우(매우) 좋았다. 어느 故宅 마당에 딱딱한 나무의자를 놓고 앉아 강릉 감재(감자) 야그(이야기)부터 끄집어내던 그가 뜬금없이 강릉 사람들이 엄청 친절하다고 말했다. 그가 강릉을 제대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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