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확대경]상실과 이별의 계절

김성일 전 강릉원주대 교수

가을은 상실과 이별의 시기인 것도 같다. 청록파 시인 박목월이 중년에 가정과 명예도 버리고 여대생 제자와 사랑의 도피 생활을 제주에서 몇 개월 하던 중 찾아온 부인의 위안과 온정에 감동하여 그간의 생활을 정리하며 착잡한 심경을 담은 시,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라는 ‘이별의 노래’는 늦가을 무렵을 무대로 한 것이다.

계절이 변화하는 시기인 환절기에는 지병이 악화된 노인들의 사망 소식도 자주 들린다. 기온 저하와 일조량 감소, 건조한 공기가 더해져 병을 만들어내며 세로토닌 호르몬의 감소와 멜라토닌 호르몬의 증가는 계절성 우울증을 유발한다. 계절을 탄다는 의미도 환경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해서 생기는 현상을 나타낸 것이다. 서늘한 기운과 적막한 분위기에서 앙상한 나뭇가지를 보노라면 상실감과 더불어 감상적이 되어 울적한 기분도 들게 된다. 수확기가 지난 황량한 들판에 줄지어 핀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적막한 밤에 들리는 풀벌레나 귀뚜라미 울음소리, 낙엽이 수북하게 쌓인 공원길은 삶의 허무함과 쓸쓸함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이처럼 우리의 생활을 반성하며 적막하고 허전한 느낌이 드는 시기에는 슬픔과 절망 속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도 있다. 이와 같은 순간에 미국 원주민이 부르는 ‘천 개의 바람이 되어’(A Thousand Winds)라는 노래는 영혼이 바람 되어 우리를 어루만져주고 있다고 전해준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에게 이 노래가 위안이 되는 이유는 삶이 허무해서가 아니라 바람과 햇빛, 별빛, 가을비, 새와 같이 형태를 달리하여 영원히 계속되니 사별이나 죽음, 작별이란 변화의 한 지점일 뿐 슬퍼하거나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는 것 때문이다. 살아있는 동안 사랑했던 사람들은 증오했던 사람들과 똑같이 공터에서 뛰어놀다가 어느새 안 보이는 저녁나절의 어린아이들과 같다. 우리 대부분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을 수 없다고 여긴다. 그러나 보거나 들을 수 없어도 바람, 중력, 기온, 전류처럼 그 존재를 알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볼 수 없다는 상실감에서 허탈해하고 허무함믈 느끼며 고통스러워할지라도 결국 자신의 삶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와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잎이 지는 가을을 조락(凋落)의 계절이라고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한다. 풀과 나뭇잎이 시들고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꼭 삭막함이나 슬픔 또는 불행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별은 삶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것이며 새로운 만남을 기약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만남과 이별, 성취와 상실의 연속이다. 상실과 이별은 고통이지만 소중함도 깨닫게 되어 자신의 변화와 성숙을 도모할 수 있다. 드높고 청명한 하늘을 보며 몸과 마음이 가을을 잘 담아서 건강하게 즐기도록 하자. 주위에서 사라지거나 돌이킬 수 없는 지난 일, 과오에 집착하며 우울해하기보다는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각오와 도약을 다짐하는 시간을 가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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