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방한 중인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국내 주요 기업 총수들이 만나 670조원 규모의사우디 초대형 신도시 프로젝트 '네옴시티'를 비롯한 경제협력 방안을 광범위하게 논의했다.
이날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빈 살만 왕세자와의 차담회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회장, 정기선 현대중공업그룹 사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이해욱 DL(옛 대림)그룹 회장 등 국내 20대 그룹의 총수 8명이 참석했다.
그룹 총수들은 오후 4시 30분 전후로 빈 살만 왕세자의 숙소인 롯데호텔에 속속 도착했으며, 보안 검색과 코로나 검사를 거친 뒤 '미스터 에브리씽'(Mr. everything)으로 불리는 빈 살만 왕세자와 마주했다. 총수들이 호텔에 체류한 시간만 2시간 30분 가량 됐다.
정기선 사장은 이날 오후 7시께 차담회를 마치고 나온 뒤 취재진과 만나 "오랫동안 여러 사업을 같이 해왔던 거라서 앞으로도 여러가지 미래를 같이 한번 보도록 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재계에 따르면 1시간 30분 넘게 이뤄진 이날 차담회에서는 총 사업비 5천억 달러(약 670조원) 규모의 네옴시티 사업을 중심으로 한 각종 협력 방안이 폭넓게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환담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고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전했다.
재계의 관심이 집중된 네옴시티 사업은 사우디 북서부 홍해 안에 170㎞에 달하는 직선 도시 '더 라인', 해상 산업단지 옥사곤, 산악 관광단지 트로제나 등을 건설하는 메가 프로젝트로, 도시 인프라와 정보기술(IT), 에너지 등의 분야에서 광범위한 사업 기회가 열려 치열한 글로벌 수주전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사우디의 포괄적 경제 개발계획인 '비전 2030' 실현을 위한 협력 방안에 대한 논의도 오갔을 것으로 관측된다.
빈 살만 왕세자는 앞서 이날 윤석열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도 "사우디 '비전 2030'의 실현을 위해 한국과 협력을 강화해 나가길 희망한다"며 "에너지, 방위산업, 인프라·건설 등 3개 분야에서 한국과 협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열린 '한-사우디 투자 포럼'에서는 한국 주요 기업과 사우디 정부·기관·기업이 다양한 산업 분야에 걸쳐 총 26건의 계약·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사우디 측에 따르면 총 300억달러(약 40조원) 규모다
그룹 총수들은 각 그룹의 주력 사업을 토대로 향후 수주 기회와 사업 협력 방안을 두루 모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회장은 빈 살만 왕세자와 개인적인 친분을 토대로 네옴시티 사업 수주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은 이미 삼성물산·현대건설 컨소시엄을 구성해 네옴시티 '더라인' 터널 공사를 수주했으며 지난 8일(현지시간) 첫 발파를 시작으로 공사에 돌입했다. 삼성물산은 한국전력 등과 함께 사우디 국부펀드(PIF)와 65억달러(약 8조5천억원) 규모의 그린 수소·암모니아 공장 건설 프로젝트 MOU도 맺었다.
특히 스마트시티 건설을 위해서는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신재생에너지 등 첨단 기술이 필수적인 만큼 삼성의 AI와 5G 무선통신, IoT 기술 등을 활용한 협력 방안 등이 논의됐을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이날 '회계부정·부당합병' 재판 일정이 있지만, 이번 회동을 위해 전날 법원에 불출석 의견서를 냈다.
이 자리에서 수소 등 친환경 에너지 개발과 원전 관련 사업에 대해 포괄적으로 협력을 강화하자는 대화가 오갔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친환경 에너지 분야를 미래 핵심 사업으로 삼는 SK그룹은 수소를 비롯한 미래 에너지 분야에서 핵심 기술을 보유한 각국의 유수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석유 중심 산업구조를 벗어나려는 사우디도 수소 등 친환경 미래 에너지 분야 투자에 주력하고 있다.
현대차그룹도 수소 기반 모빌리티 기술과 제품 개발에 주력하고, 해외 업체와 글로벌 수소 공급망을 구축하는 등 수소 생태계 구축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상태다. 정의선 회장은 미래항공모빌리티(AAM) 생태계 구축을 포함한 스마트시티 모빌리티 사업 등에 대한 협력 방안도 모색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현대중공업그룹 역시 그룹 역량을 총동원해 수소 생산·운송·공급을 주도한다는 '수소 드림 2030' 로드맵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잡았다.
두산그룹의 경우 두산에너빌리티가 원자로와 증기 발생기 등 다수의 원전 주(主)기기를 국내외에 공급하는 등 원전 설비 분야에서 입지를 다져 왔다. 올 4월에는 미국 뉴스케일파워와 소형모듈원자로(SMR) 제작 착수를 위한 협약을 맺고 원자로 모듈 시제품을 생산해 테스트했다.
김동관 부회장은 한화그룹의 역점 사업인 태양광과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방산 등의 분야에서 협력 가능성을 타진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한화는 올해 3월 사우디 국방부와 약 1조원 규모의 방산 계약을 맺은 바 있다.
이해욱 회장은 DL그룹이 그간 쌓아온 사우디 현지 공사수행 실적을 토대로 건설 부문과 탄소 저감, 탄소 포집·저장·활용(CCUS) 사업 분야에서 다양한 협력 가능성을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이재현 CJ 회장은 한류 콘텐츠 교류와 관련한 내용을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
CJ는 계열사인 CJ ENM이 올해 6월 사우디 문화부와 MOU를 맺고 영화, 음악, 공연, 음식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협력을 확대하고 문화 교류를 증진하기로 하는 등 문화 교류를 꾸준히 추진해왔다. 또 2032년까지 10년간 다양한 문화 행사를 공동 개최하고 문화 콘텐츠에 대한 투자를 진행할 계획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만남을 통해 제2의 중동 붐이 일어 우리 경제에 다시 한번 활력을 불어넣을 것을 기대하는 분위기"라며 "중장기적으로 사우디와 우리 기업 간 협력관계가 더욱 강화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