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볶음면의 품격, 춘천닭갈비의 우동사리
볶음면은 ‘밥’을 주식으로 하는 아시아 각국의 소울푸드다. 일본의 야키소바가 가느다란 면을 굴소스로 타지 않게 빠작하게 볶아낸 뒤 초생강을 하나 두개 얹어내 일본 사람들의 실용성과 꼼꼼함을 그대로 닮았다면, 중국의 차오몐은 소고기와 숙주나물을 호쾌하게 넣어 웍에서 달달 볶아낸 모습이 중국 사람들의 넉넉함과 포용력을 닮았다.
그렇다면 한국의 볶음면은? 혹자는 라면 면발에 매운 소스를 얹어 눈물 쏙 빼며 먹는 ‘불닭볶음면’을 생각하겠지만, 그 이전에 춘천의 품격, 닭갈비의 명품 조연, 우동사리가 있다.
우동사리에는 춘천닭갈비 60여년의 역사가 그대로 담겼다. 닭갈비 조리법이 ‘숯불구이’ 방식에서 ‘원형철판볶음’ 방식으로 바뀌던 1960년대 후반, 당시만 해도 춘천닭갈비는 뼈 있는 닭을 사용한 저렴한 술안주 형태였는데, 뼈 있는 닭은 크기만 클 뿐 막상 발라 먹으려면 고기 양 자체는 많지 않았다. 이때 우동사리는 2% 부족한 포만감을 충족시켜주는 역할을 했다.
이후 1990년대부터 뼈 없는 닭갈비가 주류로 자리 잡으며 고기만으로 배불리 먹는 식사가 가능해졌고 우동사리는 메뉴에 특별함을 더하는 ‘명품 카메오’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닭갈비에서 양념이 잔뜩 묻은 우동사리는 젓가락으로 한 입 밀어넣으면 후루룩 넘어가는 식감이 매력적이다. 시간이 지나면 양념과 함께 우동이 철판에 늘어붙기 시작하는데, 고기와 함께 한 가닥 한 가닥 떼어 먹는 면발 역시 별미다.


■춘천 사람들만 아는 맛 ‘된장 소면’
춘천의 닭갈비 가게나 삼겹살 가게에 가면 메뉴판에서 ‘된장 소면’이라는 이름을 흔히 볼 수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쉽게 찾기 힘든 메뉴다. 된장을 푹 끓인 찌개에 적절히 양념이 밴 소면을 먹고 나면 고기를 먹고 난 뒤의 텁텁함과 기름기가 깔끔하게 사라지곤 한다.
춘천에서 된장 소면을 처음으로 메뉴판에 올린 것으로 알려진 곳은 춘천 후평동에 위치한 ‘송&정 황토숯불닭갈비’. 2001년경 닭갈비를 숯불에 구워 팔면서 후식으로 볶음밥 대신 열무 소면을 내놨던 정성기(70)·송화진씨 부부는 1년 열두 달 고르지 않은 열무 품질 때문에 손님들에게 지적을 받자 다른 메뉴를 고민하게 됐다. 고심 끝에 오래전부터 집에서 해 먹던 된장 소면을 떠올리고 조심스럽게 메뉴에 올렸다고. 결과는 성공이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사람들에게 친숙한 재료가 된 소면과 된장은 손님들에게 크게 거부감이 없었다. 양념을 잘 흡수하는 소면은 짭짤한 된장과 어우러지며 닭갈비로 채우지 못한 배를 풍족하게 채우도록 했다. 가게마다 다른 된장을 사용하면서 국물 맛은 조금씩 다를지언정 고기로는 부족한 배를 채우고 더부룩해진 속을 따뜻하고 깔끔하게 씻어줄 된장 소면은 후식으로 빼놓을 수 없는 식순이 됐다.



■요선동, ‘맵짜’의 비밀
강원도청 밑, 춘천시청 왼쪽 건너편, 춘천의 중심을 가장 오랫동안 지키고 있는 요선동 뒷골목은 춘천의 역사와 문화를 모두 담고 있는 유서 깊은 동네다. 이곳에서 올해로 70년 동안 춘천 사람들의 ‘소울푸드’가 되어준 음식이 있다. 바로 ‘맵짜’로 불리는 ‘대화관’의 ‘매운 짜장’이다.
메뉴판에는 ‘사천짜장’이라는 이름으로 표기돼 있지만, 실제 사천에서는 이런 면을 찾아볼 수 없다. 여기에는 대화관의 초기 사장인 고(故) 이장륭씨의 인생 역정이 그대로 담겨 있으니, 바야흐로 ‘춘천짜장’이라 할 수 있다.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으로 참전한 이 전 사장이 인천 포로수용소에서 친척들과 함께 춘천행을 결심, 지금은 요선동의 한 백반집이 있는 자리 인근에 자신이 자랑할 수 있는 요리 기술을 담은 중식당 ‘대화관’의 문을 연 것. 대화관 매운 짜장의 특징은 캡사이신 양념을 쓰지 않고, 고춧가루로만 매운맛을 낸다는 점이다.
이 매운맛이 현재의 맛이 된 데에도 역사적인 사연이 있었으니, 지금으로부터 45년 전이었던 1978년 일어난 ‘고추파동’이 그 주인공이다. 고추 주산지를 중심으로 극심한 가뭄이 들어 고추 물량이 크게 감소하는 ‘고추파동’이 일자 대화관의 초대 사장인 이 전 사장은 궁여지책으로 당시 수입하던 ‘베트남 고추’를 섞어 자장 양념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 화끈한 매운맛에 그만 중독돼 버린 손님들이 늘면서 식당의 간판 메뉴가 된 것. 지금은 춘장을 채소, 고기와 함께 기름에 볶아 만든 일반 자장에 국산 청양고추와 베트남 고추를 반반 비율로 섞어 볶은 ‘매운 자장’ 소스를 섞어 매운맛의 비율을 조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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