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미지의 불빛…화광(UFO)에 대한 다양한 기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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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의궤 톺아보기]조선시대에 나타난 UFO ③·完

광해군 1년(1609년) 8월25일 강원도 하늘에서 벌어진 이상하고 기이한 자연현상(·편 참조)들은 그 어떠한 이유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에게는 단순한 볼거리나 상서로운 기운이 아닌 나쁜 징조로 여겨졌다. 그 일이 일어난 이튿날인 8월26일 우의정 심희수(1548~1622)가 임금에게 올린 말에 이와 관련된 언급이 있다.

심의수는 재상 결정과 관련된 명소(命召·임금이 특별히 부름)에 발이 굽는 병을 앓고 있어 참석하지 못한 것에 대해 사죄의 뜻을 밝히며, “어제는 태양이 떠 있는 가운데 또 화광의 변고가 있어 매우 놀랍고 참혹했으니, 국가에 장차 무슨 일이 있으려고 하늘의 경계가 이처럼 잦은 것인지 모르겠다(광해군일기 19권, 광해 1년 8월 26일 )” 고 말했다. 당시에는 하늘에서 목격된 이러한 기괴한 소동을 ‘재앙’으로 인식했고, 신하들은 자신들이 부족해 하늘이 노했다는 식으로 해석했다. 그래서 심희수는 임금에게 자신의 체직(遞職·벼슬을 갈아냄)을 요청하기도 했다.

미확인비행물체(UFO)와 관련된 사례는 ‘광해군일기’의 기록에만 그치지 않고 시대를 넘나들며 조선왕조실록에서 곳곳에서 확인된다. 특히 UFO 현상으로 의심할 수 있는 사례에서는 대부분 화광과 함께 큰 소리가 났다는 서술이 대부분이지만 상황을 비교적 상세하게 수록한 경우도 여럿 등장한다. 1711년(숙종 37년)의 사건이 대표적이다. 5월20일 경상도의 김해, 양산, 칠원 등 6개 읍에서는 해시(亥時·밤 9~11시)에 밤하늘에 화광이 나타난다.(숙종실록 50권, 숙종 37년 5월 20일) 밤하늘을 밝게 비추고 있는 화광은 “위로 뾰족하고 아래는 넓었으며 그 크기는 항아리(缸)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실록은 그것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갔고, 대포소리와 천둥소리가 나더니 별이 떨어지는 현상과 함께 화광 또한 사라졌다고 적고 있다. 이보다 약 300년 전인 1420년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이번에는 이를 제대로 관측하지 못한 관리가 처벌까지 받는다. 1420년 1월4일 은병(銀甁) 모양의 괴 비행체가 동북쪽에서 서남쪽으로 날아가면서 우레같은 소리를 낸 괴이한 기상과 관련된 기록이 그것이다. 천문현상을 관찰하는 실무를 담당했던 사력(司曆)으로 일하던 위사옥이라는 사람은 이런한 일이 있었는지 조차 모르고 있다가 옥살이를 하게 된다.(세종실록 7권, 세종 2년 1월 4일)

화광에 대한 가장 극적인 표현은 선조실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1588년 윤 6월에 발생한 일이다. 북병사(함경도 북병영에 둔 병마절도사)가 임금에게 올린 계본(啓本·임금에게 제출한 문서) 내용에 따르면 6월 2일 이경(二更·밤 9~11시)에 온성에 하나의 불덩이가 나타나는데, 그 형체가 마치 사람이 둥근 방석에 앉아 있거나 활과 화살을 휴대한 것 같기도 했다고 묘사하고 있다. 그것은 하늘을 날아 북쪽으로 향했는데 뒤어어 천둥이 치고 얼음이 쪼개지는 듯한 소리가 나는가 하면 뜨거운 바람이 사람의 낯을 데울 정도 였다고 하며 그 변괴가 비상하다고 했다. (선조실록 22권, 선조 21년 윤6월 24일)

이와같이 현대의 UFO 개념으로 이해 할 수 있는, 화광(火光·불에서 나오는 밝은 빛) 관련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서만 200회 넘게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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