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천 공지천에 가면 에티오피아 참전 기념비가 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에티오피아 셀리시에 황제는 근위대까지 포함된 강뉴부대를 파병했는데 ‘강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혼돈에서 질서를 확립한다는 의미와 격파하라는 뜻의 ‘초전박살’이다, 강뉴부대는 이름에 걸맞게 여러 전투에서 한 번도 물러서지 않는 용맹함으로 참전국 사이에 많이 회자됐다고 한다.
‘초전박살’은 소방관들에게 익숙한 용어다. 화재를 초기에 진압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전투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산림화재는 초기에 진압하지 못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피해가 확산되기 때문에 초전에 박살내는 대응전략이 필요하다. 초기에 효율적인 대응이 이뤄지지 않으면 반드시 대형 산림화재로 확산된다는 경험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강원도소방본부는 그동안의 산림화재 경험을 바탕으로 예방과 대응을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 추진하고 있다. 특히 운전 중 차창 밖으로 던진 담뱃불로 산림화재가 많이 발생하고 있어 자동차 운전 중에는 금연하자는 홍보를 강화했고, 신속한 대응을 위해서도 다양한 대응전술을 운용하고 있는데 그중 몇 가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산림화재에 취약한 영동지역에 소방차를 미리 배치해 적극 대응토록 하고 있다. 2019년 고성 산림화재 시 전국 소방차들이 줄지어 고속도로를 달려가는 장면을 많은 국민이 기억하고 있다. 지역 특성상 동해안은 강풍으로 인해 대형 산림화재의 위험이 아주 높은 지역이다. 강풍과 건조 관련 기상특보가 있으면 영서지역의 소방차를 영동지역으로 이동시켜 놓는다. 둘째, 진화헬기의 출동 소요시간을 단축시켜 대응하고 있다. 화재 현장에 도착한 현장지휘관들이 산림화재를 확인하면 지체 없이 헬기 출동을 요청토록 했다. 119항공대에서는 격납고의 셔터문 개방, 헬기 이동, 방수장비 장착 등 출동 과정을 분 단위로 점검해 과거 30분 이상 소요되던 이륙시간을 14분으로 단축시키는 등 초기대응에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 셋째, 지상 인력들이 산림화재 현장으로 올라가 직접 불을 끄는 공격적인 전술을 적극 전개하고 있다. 특히 산림화재는 헬기로 꺼야 한다는 인식이 깊어 인력으로 대응할 수 있음에도 진화헬기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진화헬기 의존형의 대응은 재발화의 위험을 안고 가는 전략이다. 강풍에도 뜰 수 있는 더 크고 더 많은 헬기가 있어야 한다는 정책에 대한 변명을 합리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현장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경험들은 재난대응에 있어서 인간이 대응할 수 있는 범위와 대응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 어디쯤인지 그 경계를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최근 강릉 대형 산림화재 발생 초기 강풍에 번져 나가는 화세는 인간이 가진 그 어떠한 장비와 시스템으로도 제압할 수 없다. 하지만 그 화세가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 지속되지 않기 때문에 약화되는 시점이 있다. 인간의 대응영역으로 들어오면 진행되는 화염의 연결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대응이 이뤄져야 한다. 모든 산림화재의 시작은 작은 불티 하나로 시작되므로 대형 산림화재가 빈발한다는 말은 초기대응에 많이 실패하고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산불은 발생 초기에 제압할 수 있는 초전박살의 전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끝으로 이번 강릉 도심형 대형 산림화재로 피해를 입으신 분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과 빠른 복구를 기원드린다. 멀리서 화재 진화를 돕기 위해 강릉으로 달려와 주신 전국의 소방관들에게도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