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 개정된 민법 제1008조의 3은 “분묘에 속한 1정보 이내의 금양임야와 600평 이내의 묘토인 농지, 족보와 제구의 소유권은 제사를 주재하는 자가 이를 승계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나 구체적으로 누가 제사(祭祀)를 주재(主宰)하여야 하는지에 대하여서는 규정하고 있지 않다.
누가 제사를 주재할 지 여부에 대하여 법에 명확히 규정하지 않고 공백 상태로 두면서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사회공동체의 생활규범에 그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을 유보하고 있을 경우 현 시대의 사회상과 제사가 가지는 의미 그리고 현실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어 보인다.
2005년 민법개정으로 호주승계제도가 폐지된 이후인 200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는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제사주재자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은 한 망인의 장남(장남이 이미 사망한 경우에는 장손자)이 제사주재자가 되고, 공동상속인들 중 아들이 없는 경우에는 장녀가 제사주재자가 된다”라는 입장이었다.
이때까지는 제사 주재자의 결정기준에 적장자 개념이 중요한 기준이 되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제사의 개념이 중국 봉건시대인 주대(周代)에 성립한 적장자 중심의 종법(宗法) 사상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은 제사의 시대적 의미에 부합하기 어려워 보인다.
오늘날 장례는 과거의 전통적인 매장대신 화장 자연장 등 장례방법이 다양화되어 가고 있고, 저출산 현상이 심화되면서 2022년도 합계출산율이 0.78명으로 현재인구가 유지될 수 있는 2명에도 못 미치는 상황에서 적장자 종손이라는 개념이 계속하여 유지 될 수 있는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제사 진행의 현실은 종손을 중심으로 고조부모까지 4대봉사(奉祀)하는 대신 얼굴을 기억하는 조상을 대상으로 하고 부부의 경우 같은 날 제사를 진행함으로서 횟수를 축소하기도 한다.
제사의 의미와 관련하여 본질적으로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경애와 추모가 중요한 것이지 형식과 절차에 치중하는 것은 현대의 사회상과 일치한다고 보기 어렵다.
조상에 대한 숭조(崇祖)사상, 경로효친사상이 우리의 고유한 전통문화에 해당하지만 전통이란 역사성과 시대성을 띤 개념으로 남녀평등이라는 현대적 이념도 반영되어야 한다.
제사의 주재자라는 개념은 일정부분 재산적권리를 가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유해의 처리와 분묘 내지는 봉안당에 대한 관리와 제사 관련 비용의 부담과 같은 의무를 현실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상당한 책임이 따르는 지위이다.
이러한 의문과 논란에 대하여 2023년 5월1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제사주재자는 공동상속인들 사이의 협의에 의해 정하되,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제사주재자의 지위를 인정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피상속인(돌아가신 분)의 직계비속(자기로부터 직계로 내려가는 혈족)중 남녀, 적서(嫡庶)를 불문하고 최근친의 연장자가 제사주재자로 우선한다. 새로운 법리는 이 판결 선고 이후에 제사용 재산의 승계가 이루어지는 경우에만 적용된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이 판결 선고 이전에 제사용 재산의 승계가 이루어진 사안에서는 여전히 과거 대법원 판결의 법리가 적용된다” 라고 판결하였다.
결국 이 판결은 기존의 전통적 적장자 개념에 기반한 제자 주재자의 결정기준을 오늘날의 사회현실과 남녀평등사상을 최대한 반영하여 우리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