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법정칼럼] 양형의 기준

박현기 춘천지방법원 판사

“판결이 국민의 법 감정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판결이 내려진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얼마 전 우리 법원에 견학을 온 법학 전공 대학생의 질문이었다. 어떤 판결을 지목하는지 반문해보니, 역시나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언론에 보도되는 형사사건 판결의 가벼운 형에 관한 것이었다.

형사사건의 쟁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는 유·무죄 판단이다. 검사가 주장하는 공소사실이 사실인지, 그 공소사실이 현행법상 죄를 구성하는지 우선적으로 다투어진다. 법정에서 피고인 및 변호인과 검사가 치열하게 사실 인정 및 법리에 관한 다툼을 벌이기도 하지만, 많은 사건에서는 피고인이 선처를 바라며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기도 한다. 두 번째는, 유죄가 인정되는 경우 피고인에 대하여 적절한 형의 종류와 범위를 정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를 ‘양형’이라 한다. 즉, 양형은 범죄의 유책한 불법이 측정되고 이를 구체적이고 집행 가능한 형량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요즘 뉴스포털의 메인에는 교통범죄에서부터 흉악한 강력범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사사건 판결에 대한 기사가 매일같이 게재되고 있고, 이러한 기사에 달린 댓글은 대체로 지나치게 가벼운 형을 선고한 법원의 양형을 성토한다. 언론을 통해 형사사건의 대략적인 내용과 결과만을 접하게 되는 국민들의 관심은, 보통 재판과정에서 이루어진 치열한 공방의 내용보다 그 결과에 해당하는 양형에 모이게 된다. 범죄자에 대하여 죄책에 합당한 형사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형사재판의 본질 중 하나임이 분명하고, 통상적인 형사재판에서의 낮은 무죄율까지 보태어 보면, 형사재판의 주요 참가자인 피고인과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관심사가 양형에 집중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이러한 관심사를 고려하면, 양형은 형사재판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와 직결될 수밖에 없고, 법원은 양형의 합리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노력을 해오고 있다. 이러한 노력에는, 국민참여재판의 실시, 영상재판의 확대 등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중 첫손 꼽히는 것은 ‘양형기준’이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는 2009년 7월 1일부터 범죄유형별로 구체적인 양형기준을 만들어 공개하였고, 양형기준을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동시에 시대의 변화에 따라 수정·보완하는 작업을 계속해오고 있다. 현재는 살인, 성범죄, 사기 등 44개 주요한 범죄유형에 관하여 양형기준이 시행 중이다.

양형 과정을 개괄적으로 살펴보건대, 먼저 각 범죄에 대응하여 법률에 규정되어 있는 ‘법정형’ 중에 선고할 형의 종류를 선택하고, 법률에 규정된 바에 따라 형의 가중·감경을 하여 일정한 범위의 형태로 ‘처단형’을 정하게 된다. 이러한 처단형의 범위 내에서 특정한 형을 정하여 선고한다. 양형기준은 이때 참조하는 기준이 되지만, 현행법에서는 원칙적으로 재판부를 구속하는 효력까지는 부여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재판부가 양형기준을 이탈하는 형을 선고하는 경우에는 그 이유를 상세하게 설시하여야 하는 의무를 부담하므로, 합리적 사유 없이 양형기준을 벗어나기 어렵고(권고적 효력), 실제로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 동안 양형기준 준수율은 90.7%에 육박한다.

양형기준의 설정과 적용은 형사재판을 받는 피고인과 그 변호인으로 하여금 선고될 형의 범위를 예측할 수 있도록 하여 양형의 합리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법원의 노력이다. 이러한 노력이 빛을 발하여 법원이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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