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과학기술문명 시대에 살고 있다. 과학기술이라고 할 때 과학은 자연과학을 일컫는다. 자연과학은 자연에 대한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 지식을 말한다. 기술은 인간의 욕구와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연환경을 변형하는 것이고, 과학기술문명은 자연과학과 공학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문명을 뜻한다.
21세기 과학기술문명 시대에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 과학이 다시 소환되고 있다. 리 맥킨타이어는 탈진실의 역사와 가짜뉴스를 다룬 책 <포스트트루스>에서 과학부인주의의 사례를 들고 있다. 과학부인(否認)주의는 널리 인정받는 과학적 사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과학적인 연구 방식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태도를 말한다. 지난 40년간 지속되었던 담배의 폐암 유발과 관련된 과학적 사실에 대한 논란과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지구온난화에 대한 부정적 이슈 제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두 사례에서 볼 수 있는 소위 과학부인주의는 담배회사와 석유회사의 경제적 이득에서 비롯되었다.
‘하루에 포도주 한 잔 정도는 몸에 좋다’는 가설과 ‘하루에 커피 한두 잔은 몸에 해롭지 않다’라는 가설은 과학적으로 어떤 것이 맞는지 시간이 지난다 해도 판별이 날 것 같지 않다. 어떤 의사들은 단 한 방울의 알코올도 몸에 좋지 않다고 단언하고, 어떤 이들은 커피에 들어있는 카페인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고 한다. 이에 관한 연구는 수도 없이 많지만 상반된 결론들이 소비자들을 헷갈리게 한다. 술과 커피는 기호식품으로 개인의 선호와 판단에 따라 소비하면 되지만,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 문제는 그렇지가 않다.
오염수인지 오염처리수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후쿠시마 오염수에 녹아있는 다핵종을 제거하기 위해 일본 기업이 만든 다핵종제거설비(ALPS)로 처리되었으니 오염처리수가 맞지만, 그 안에는 APLS로 처리되지 않는 삼중수소와 기타 핵종들이 남아있으니 여전히 오염수이기도 하다. 특히 인체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삼중수소는 ALPS로 처리가 되지 않아 일본 정부는 삼중수소의 농도를 희석해서 방류하고 있는데,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희석된 삼중수소의 농도가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 이하로 내려가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지만, 식수로 사용할 때의 안전성이 아니라 방류 이후 생태계의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인체에 축적되는 위험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어느 정도 희석된 삼중수소가 결과적으로 인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지, 삼중수소와 기타 핵종의 절대량이 해조류나 생선 등 바다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후쿠시마 앞바다에 방류된 원전 오염수는 언제쯤 제주도와 한반도로 유입되는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처리는 해양 방류보다 더 안전한 대안이 없었는지 궁금한데 정부나 학계로부터도 이에 대한 객관적이고 투명한 소위 과학적인 설명을 들을 수 없다.
지난달 24일 도쿄전력의 원전 오염수 방류는 시작되었다. 우리 사회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에 대해 지금보다 더 과학적인 접근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정부는 과학을 믿어달라고 한다. 그러나 과학은 검증의 대상이지 맹종하거나 무턱대고 부인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 특히 국민의 안전과 생명에 직결된 문제일수록 투명하고 객관적인 과학적 논의가 절실하다. 그래야만 이 문제가 더 이상 정쟁화되어 소모적인 논쟁으로 이어지지 않고 과학기술문명 시대를 살아가는 수산업계 종사자와 시민들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