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라떼는 말이야] 1970년 여름 소양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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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여름 소양강

더위가 끝났다 싶더니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소양강은 물놀이를 하기엔 최적의 장소였다. 소양강은 춘천사람들에게 고향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소양강댐이 건설 되기 전 소양강변의 모습을 찾아서 타임머신을 53년 전으로 출발시켰다.

춘천은 상상의 동물이 모두 모여 사는 곳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상의 동물은 용, 봉황, 기린 등이다. 용은 대룡산과 용화산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봉황은 봉의산과 봉추대(고산), 봉황대에 자취가 남아있다. 기린은 소양강을 따라 올라가면 조선 시대 춘천도호부 관할이었던 인제 기린에 흔적이 있다. 소양강의 다른 이름은 기린을 상징하는 린강이기도 하다.

다른지역에 비해 작가들이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는 것은 상상의 동물이 많은 영감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춘천의 지명은 상상의 동물과 관련이 깊다. 소양강의 유래는 상고시대로 올라간다. 은나라의 음악은 소소라고 불렸다. 봉황은 소 음악이 9번 연주되면 날아와 춤을 추었다고 전해진다. 소양강은 은 나라의 음악의 상징을 따서 만들어졌다. 소양강의 여울은 소리를 내며 흐르면 소소 음악이 연주되듯 봉황이 날아들어 춤을 춘다. 봉의산은 춤추는 봉황의 모습을 하고 있어 이름지어졌다.

봉황은 대나무 열매를 먹고 산다고 전해진다. 강원도에서 대나무는 해안성기후로 따듯한 영동지역에서나 볼 수 있다. 겨울이 유난히 추운 춘천에서 대나무를 살리기 위해 조양동이라는 지명을 지어 따뜻한 햇볕이 들게 만들었다. 그 결과 죽림동, 대바지강 등의 지명이 만들어지게 됐다.

춘천은 소양강과 북한강 두 개의 강물이 모이는 합수머리다. 북 강원도의 금강산은 말이 필요없는 명소로 수 많은 전설과 명사들이 찾아가는 명산이다, 남 강원도의 설악산 또한 동해의 맑은 기운이 모인 산으로 두 개의 산에서 발원한 신성한 물은 춘천으로 모인다.

춘천에 옛부터 살기 좋은 도시를 선정할 때 상위권을 차지하는 이유다. 소양강변은 맑은 물과 백사장으로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1970년 여름 소양강변의 백사장에 젊은 남녀들이 모여 물놀이를 하고 있다. 지금의 동부아파트 앞 강변으로 비키니를 입은 학생들이 수영강습을 받고 있다. 발차기 시범을 보이는 교사와 진지하게 설명을 듣는 학생들이 마치 동해안 해변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백사장은 당시 춘천시민들의 축제의 장소로도 사용됐다. 씨름 대회가 열리는 장소로 단골장소였던 이곳은 시민들의 생활이자 문화의 장소였다. 또 한 장의 사진은 수영복을 입은 청년들이 소양강을 건너고 있다. 발목 위를 담글 정도로 얕아 덤벙 소리를 내며 걷고 있다. 소양1교가 끝나는 지점 위에 소양정이 보인다. 소양정 주변은 나무가 없어 시야가 트여져 있다. 우두동과 동면 장락리, 신북 일대가 한눈에 들어 올 듯 하다.

사진 속의 백사장은 춘천의 모습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백로주로 불리던 백사장은 옛 선조들이 한시에 단골로 등장한다. 백옥같이 흰 모래는 대한민국이 건설경기가 한창이던 1970년대 도시로 팔려 나갔다. 남은 백사장은 소양강댐 건설로 담수가 되자 물에 잠겨 사라졌다. 소양강댐은 완공 당시 동양최대의 사력댐으로 수도권지역의 홍수 방지와, 전기 공급, 상수도 공급을 위해 1967년 4월에 착공해 1972년 10월에 완공돼 올해로 50주년을 맞는다.

춘천시 북산면과 동면, 양구군 양구읍과 남면, 인제군 남면등 6개 면 38개 동과 리 일대의 4,600 세대가 고향을 잃어 버렸다. 소양강은 전설의 동물과 사람들의 애환에 섞여 있는 지역의 상징이다. 김남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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