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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의궤 톺아보기]되돌아온 오대산사고본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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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교정쇄본은 현재 ‘성종실록’과 ‘중종실록(50책)’만이 남아있다. 1606년 오대산사고 건립과 함께 봉안된 성종실록은 전체 47책 가운데 9책만이 남아 전해지고 있다. 성종실록 9책에는 1475년(성종 6년) 1월부터 1479년(성종 10) 8월까지의 일부 기록이 담겨져 있다.

오대산사고본에 남아있는 ‘성종실록’은 세조의 비인 정희왕후의 수렴청정 막바지 시기(1475년)와 성종의 친정이 시작된 시기(1476년)에 걸쳐있다. 실록에는 정순왕후가 정무에서 물러날 뜻을 밝히고 임금(성종)에게 권한을 넘기는 장면 등이 담겨있다.

“마침 지금은 임금의 나이가 이미 장성(長成)하고 임금의 학문도 이미 성취되어 만기(萬幾·임금이 보살피는 여러가지 정무)를 재결(裁決)함이 문득 규정과 법도에 합당하니, 나 같은 늙은 부인(婦人)이 마땅히 다시 쓸데없이 간섭할 바는 아니다.(성종실록 63권, 성종 7년 1월 13일)

예종이 이어 왕위를 계승받을 때 성종의 나이가 13세였기 때문에 성년이 될때까지 정희왕후가 대신해서 국정을 운영하게 된다. 수렴청정을 시작한지 7년후 인 1476년(성종 7년)은 성종이 스무살로 성년이 되던 해이다. 정희왕후가 더 이상 성종을 대신해서 국정을 운영할 명분이 없었졌기 때문에 신하들이 수렴청정의 중단을 건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복정(復政·수렴청정에서 친정으로의 전환)을 두고 신하들 사이의 대립이 상당했음 또한 실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성종실록 86권, 성종 8년 11월 4일 내용

오대산사고본 성종실록에서는 재미있는 사실도 만날 수 있는데 바로 성종의 동물사랑이 그것이다. 그 가운데 1477년 일본에서 선물받은 원숭이에 대한 성종과 신하와의 대화를 실록에서 만날 수 있다. 한 신하가 원숭이는 상서롭지 못한 짐승이니 사람의 옷을 입힐 수 없다고 말한다. 이는 성종이 원숭이가 추위에 떨것을 걱정해 집과 옷을 지어줄 것을 요청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성종의 답변은 변명에 가깝다.

“내가 애완물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외국(外國)에서 바친 것을 추위에 얼어 죽게 하는 것은 불가(不可)할 것이다. 사복시(司僕寺)에서 청(請)한 것은 옷이 아니고 녹비(鹿皮·사슴의 가죽)를 주어서 이에 입히고자 청하였을 뿐이다. 경이 잘못 들은 것이다.(성종실록 86권, 성종 8년 11월 4일·사진)

원숭이에게 옷 한벌 지어주는 일로 실록에 남는 논쟁까지 했으니, 당시 성종을 둘러싼 훈구세력들로 인한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 아니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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