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강원의 점선면]천년고찰에 쌓아 올린 걸작 ‘탑’에 빠져든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팔각구층석탑 상륜부. 사진=문화재청
◇팔각구층석탑기단부. 사진=문화재청
◇1929년에 촬영된 월정사 팔각구층석탑과 석조보살좌상.사진=국립중앙박물관

춘천박물관 ‘오대산 월정사:절, 산속에 피어난 이야기

25일까지 기획전시실서 다양한 사연 품은 문화재 선보여

고화질 영상속 팔각구층석탑 불교문화 귀족적 면모 두각

가림막 한채 보수공사 중장중한 자태 다시 볼날 손꼽아

국립춘천박물관은 특별기획전으로 ‘오대산 월정사:절, 산 속에 피어난 이야기’를 선보이고 있다.

오는 25일까지 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계속되는 이번 전시에서는 오대산의 불교 신앙이 시작된 자장율사 이야기와 사리 신앙 등을 주제로 섹션을 구분, 국보 ‘상원사 중창 권선문’ 언해본과 한문본, 보물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보살좌상 복장유물’ 등 월정사의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사연을 품은 문화재들을 만나 볼 수 있게 했다.

월정사가 품은 최고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 ‘팔각구층석탑(국보)’은 ‘이야기의 숲, 오대산을 거닐다’ 코너에서 19세기 그림을 바탕으로 재현된 오대산사고와 월정사의 전경 등과 함께 고화질 영상으로 조우할 수 있다. 불교문화 특유의 화려하고 귀족적인 면모가 돋보인다는 ‘팔각구층석탑’은 높은 가림막을 하고 오랜 기간 보수공사가 진행되고 있으니 현재로서는 박물관을 찾는 것이 ‘간접적’이지만 팔각구층석탑을 가장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하겠다.

“오대산은 나라 안의 명산 중에서도 가장 좋은 곳이며 불법(佛法)이 길이 번창할 곳(삼국유사 中)”이라고 여겨졌다. 특히 이곳은 물과 불, 바람 등 삼재(세 가지 재앙)가 침입하지 못한다는, 이른바 삼재불입지처(三災不入之處)로 불렸다.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 자장율사가 이곳에 도착해 천년고찰 월정사의 터를 잡고, 1,00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선조 39년(1606년)에 이르러 오대산사고가 건립된 이유이기도 하다.

팔각구층석탑은 6·25전쟁 중 월정사 경내에 있던 칠불보전(七佛寶殿)을 비롯한 10여 동의 법당들이 화마에 휩싸여 소실돼 사라졌을 때도 석조보살좌상과 함께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며 평창의 랜드마크로 불리는 월정사의 중심부를 지키는 상징으로 주목받고 있다.

오대산 월정사의 본당인 적광전(寂光殿)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는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은 고려 전기 석탑을 대표하는 작품이라는 평가와 함께 탁월한 심미성을 인정받아 1962년 일찌감치 국보로 지정됐다.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수종사 팔각오층석탑(보물)이나 북한 평안북도 향산군의 보현사 팔각십삼층석탑과 같이 고려시대가 되면 다각형의 다층(多層)석탑이 북쪽지방에서 유행하게 되는데, 월정사 팔각구층석탑도 그러한 흐름 속에서 제작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탑은 팔각 모양의 2단 기단(基壇) 위에 9층 탑신(塔身)을 올린 뒤, 머리장식을 얹어 마무리한 모습을 하고 있다. 아래층 기단에는 안상(眼象·눈모양의 장식)을 새겨 놓았고, 탑신부는 일반적인 석탑이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급격히 줄어드는 모습과 달리 2층 탑신부터 거의 같은 높이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1층 탑신의 4면에 작은 규모의 감실(龕室·불상을 모셔두는 방)을 마련해 둔 것이 눈길을 끈다. 팔각의 끝부분에는 풍경을 달아 놓았고 지붕돌 위로는 머리장식이 남아 있는데, 아랫부분은 돌, 윗부분은 금동으로 만들어서 화려함을 더한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풍경과 금동으로 만들어진 머리장식을 통해 금속공예의 화려한 수법들을 살필 수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끄는 부분이다.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앞에는 오른쪽 무릎을 꿇어 땅에 대고 두 손을 가슴에 모은 자세로 탑을 향해 공양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보살상(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국보)이 탑과 함께 만들어져 놓여 있었는데 현재는 월정사 성보박물관으로 옮겨져 있다.

1970년 10월 기울어진 탑에 대한 해체 보수가 진행됐는데, 석탑의 5층 지붕돌 상면의 네모난 구멍에서 은제 도금의 여래입상 1구가 출토되고 1층 몸돌 상면의 둥근 사리공 안에서는 동경(銅鏡)·경문(經文)·향목(香木) 등의 사리장치가 발견되는 등 9종 12점의 문화재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한편 탑의 건립시기는 미술사학가인 고유섭씨가 11세기 후반으로 설정한 것을 비롯해 1970년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의 해체 수리 당시 조사단은 고려 초기로 설정하는 등 다양하다. 범일의 제자인 신의두타가 활동했던 10세기 전반기로 추정한 의견이 나온 적이 있고, ‘삼국유사’에 실린 ‘오대산문수사석탑기(五臺山文殊寺石塔記)’를 근거로 13세기 중반 이후로 추정하는 의견도 있다.

건립 시기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하늘을 향해 살짝 들려 있는 팔각의 귀퉁이와 적광전의 팔작지붕이 어우러지면서 월정사를 찾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다. 가림막을 열고 장중하면서 아름다운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의 자태를 다시 보게 될 날을 기다려 본다.

도움말=국가문화유산포털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피플 & 피플

이코노미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