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봄·아침의 상징 청룡, 주변 사람들과 조화 이뤄 힘 얻는 해

갑진년(甲辰年) 용 이야기
김풍기 강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열두 개의 띠 동물 중에서 용은 유일하게 그 실체를 볼 수 없는 존재다. 상상의 동물로 취급되기는 하지만, 옛날 사람들은 용의 존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부터 용의 존재가 이야기 속에 전하지만, 서양이 용을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로 만들었던 데 반해 동아시아에서는 신령스러운 존재로 인식해왔다. 근대 이전까지만 해도 왕은 용에 비견되면서 왕을 지칭하는 많은 단어에 용이 활용되었다. 왕의 얼굴은 용안(龍?), 왕이 앉는 의자는 용상(龍床), 왕의 눈물은 용루(龍淚)라고 불렀다. 왕이 아니더라도 뛰어난 인재를 용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제갈량을 와룡선생이라 지칭했던 것은 그러한 예라고 하겠다.

한반도 지역에 용의 이미지가 들어온 것은 언제부터인지 분명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고구려 고분 벽화에 청룡이 그려져 있을 뿐 아니라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와 같은 문헌에 용과 관련된 기사가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면 삼국 시대에 이미 용의 이미지는 상당히 널리 유포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 즉 동명성왕의 아버지는 천제의 아들인 해모수다. 해모수는 자주 천상과 지상을 오갔는데, 그때 타고 다녔던 수레는 다섯 마리의 용이 끄는 오룡거(五龍車)였다. 신라와 백제의 기사에서도 용이 나타났다는 기록이 자주 등장하거니와 삼국 시대에 용은 이미 한반도의 문화에 깊이 들어와 있었다.

우리 설화에서 용은 물을 관장하는 신, 나라와 불교를 지키는 수호신, 나라와 개인의 운명을 점치게 하는 예언자, 복을 불러오는 신 등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한반도 전역에서 용왕제나 용신굿을 통해서 민간신앙의 신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불교를 비롯한 다른 종교와 만나서 민중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신으로 좌정하기도 한다. 과거 시험을 비롯한 주요 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용 그림을 부적처럼 간직하기도 하는데, 이는 등용문(登龍門) 고사 때문일 것이다. 정월 보름이면 첫닭이 울 때 일어나서 맑은 샘물을 떠오는데, 이를 용알뜨기라고 한다. 제일 먼저 떠오는 사람은 그해 농사가 풍성해진다고 한다. 한 해의 운명을 점치는 신수점을 보았는데 나쁜 운세가 나오면 바가지에 불을 켜고 그 안에 밥과 액운을 벗어나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써서 바다나 시냇물에 띄우는데 이를 용왕밥주기라고 한다. 용꿈을 꾼 다음 날은 모든 일이 잘 풀릴 것만 같다.

우리 민속에서 용과 관련된 수많은 민속은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러나 용이 아무리 신성하고 신이한 힘을 가졌다 해도 반드시 물이나 구름과 같은 환경에 처해 있어야 제 힘을 발휘한다. 우리 속담에 ‘개천가에 나온 용은 개미도 뜯어 먹는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큰 힘을 가지고 있어도 자신의 세력권을 벗어나면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세상에 자기 힘만으로 살아가는 생명이 어디 있겠는가. 인간을 위해 수많은 혜택을 베푼 덕분에 인간의 외경심을 받는 용이지만, 동시에 인간의 깊고 큰 염원이 용을 신이한 존재로 만든다.

갑진년(甲辰年)은 청룡의 해다. 동쪽을 수호하는 신이기도 하고 봄을 상징하기도 하며, 하루 중에서는 아침을 의미한다. 갑진년 새해를 맞아 새롭게 시작하는 천지의 기운을 받아서 한 해의 계획을 잘 세워보자. 나 혼자만의 힘으로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보다는 주변 사람들과 함께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계획을 세운다면 모두 행복한 한 해를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지선 1년 앞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