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손흥민 부친 손웅정 "아시안컵 우승 바라지만 지금 우승하면 한국 축구 병들까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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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 관련 질문에 "토씨 하나 건드리지 말고 써달라. 월드클래스 아니다"
기본기 교육만 하던 SON축구아카데미, 중등리그 도전…"승패 연연 안 해"
"의대 쏠림? 자녀를 소유물로 인식하는 부모 탓 …부모부터 솔선수범해야"

◇축구 국가대표 손흥민의 아버지인 손웅정 감독이 서울 강서구의 한 호텔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춘천 출신 한국 축구 '캡틴' 손흥민(토트넘)의 부친 손웅정(61) SON축구아카데미 감독은 64년 만의 카타르 아시안컵 우승 전망에 대해 "냉정하게 말하면, 한국 축구의 미래를 생각해 이번에 우승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손 감독은 갑진년 새해를 맞아 서울의 한 호텔 카페에서 가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축구 실력, 축구계의 투자 등 모든 면에서 한국은 일본에 뒤진다.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우승해버리면 한국 축구가 병 들까 봐 걱정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64년 동안 한 번도 우승 못 한 것에 대해 나는 물론이고 모든 축구인이 반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은 '아시아 최강'을 자처하면서도 1956년 제1회 대회와 1960년 제2회 대회에서 2연패를 이룬 뒤로는 단 한 번도 아시안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했다.

다만 현재 '역대 최강'이라는 평가를 받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이번 카타르 아시안컵 만큼은 우승을 차지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세계 최고의 공격수 반열에 오른 손흥민의 기량이 농익은 데다 창의적인 패스를 구사하는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명문' 바이에른 뮌헨(독일)의 주전 센터백 김민재 등 전 포지션에 걸쳐 특급 선수들이 포진해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적인 선수를 키워낸 손 감독의 시각은 우승을 '못 할 것'이라기보다는 '해서는 안 된다'는 쪽에 가까웠다.

한국과 '숙적' 일본 중 어느 팀이 더 우승 가능성이 높아 보이냐는 질문에 손 감독은 "(선수 개인 기량의 총합을 놓고 볼 때) 한국은 일본에 게임도 안 된다. 우리 축구인들이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에 출전하는 축구 대표팀의 손흥민이 4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의 뉴욕대학교 아부다비 스타디움에서 훈련하고 있다. 2024.1.5 [대한축구협회 제공.]

'아들이 대표팀 캡틴인데 그렇게 말씀하셔도 되느냐'고 묻자 손 감독은 "당연히 한국이 우승하기를 바란다. 그런데 이렇게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우승해버리면 그 결과만 가지고 얼마나 또 우려먹겠느냐"라면서 "그러다가 한국 축구가 병 들까 봐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이어 "텅 빈 실력으로 어떻게 속여서 일본 한 번 앞섰다고 해도, 그건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그래서)우승하면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손 감독은 어린 나이부터 승패의 결과에 매몰돼 기본기를 닦는 데에 소홀한 한국 축구 지도 방식을 비판해왔다.

그가 운영하는 사단법인 'SON축구아카데미'에서는 그간 볼 리프팅 등 기본기 교육만 해왔다. 그러다가 올해부터 강원권역 중등부 축구리그에 출전하기로 했다. SON축구아카데미서 기본기만 수년간 갈고 닦은 중 1, 2학년 선수들이 3학년이 주축이 된 팀들과 경쟁하게 된 것이다.

손 감독은 지금까지 해 온 것과 마찬가지로 "승패에는 연연하지 않을 것"이라며 "키 크고 덩치 큰 애들 상대로 우리 애들이 영리하게 볼 잘 차는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손 감독은 손흥민이 여전히 월드클래스가 아니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아니다. 토씨 하나 건드리지 말고 그대로 써달라. 월드클래스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축구 국가대표 손흥민의 아버지인 손웅정 감독이 서울 강서구의 한 호텔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손 감독은 교육 철학의 가장 중요한 방법론에 대해서도 확고한 소신을 밝혔다.

그는 거실에서 TV를 없애고, 집에 오면 부모 핸드폰부터 치워 두는 게 가정 교육의 첫걸음이라고 했다.

손 감독은 "아이가 태어나면 말은 못 하고 눈으로 보기만 한다. 누구나 부모의 뒷모습을 보며 성장하게 된다"면서 "부모는 TV 보고 핸드폰 화면 들여다보면서, 애들에게 공부하라고 하면 하겠느냐. 자녀가 책을 읽기를 바란다면, 거실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써라"라고 말했다.

'솔선수범'은 손 감독 교육 철학의 가장 중요한 방법론이다.

훈련법 하나하나마다 직접 해보고서야 손흥민을 가르치는 데 적용했다는 일화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손 감독은 축구 기술뿐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손흥민에게 본을 보이려 노력했다.

그는 담배와 술잔을 입에 대지 않았다. 술은 최근 들어서야 건강을 위해 와인 한 잔씩 마시곤 한다.

힘들게 살아가던 시절, 어린 손흥민을 훈련장으로 실어 나르던 비 새는 구형 프라이드 차량을 닦고 또 닦으며 감사해하기도 했다. 이런 마음가짐의 손 감독을 보면서 손흥민은 누구보다 팬 서비스에 진심인 스타로 성장했다.

자신의 욕망을 다스릴 줄 아는 부모만이 아이를 가르칠 자격이 있다는 게 손 감독의 생각이다.

손 감독은 "카페에서 아이들에게 스마트폰 영상 보여주는 건 결국 부모가 편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 아닌가"라며 "난 아이들이 어릴 때 식당에 가면 흥민이 엄마와 번갈아 가며 밖에서 애를 보며 밥을 먹었다"고 돌아봤다.

이어 "부모라면, 배고픔, 불편함을 견딜 줄 알아야 한다. 그 모든 것을 아이들은 보고 배운다"고 말했다.

손 감독은 성선설을 믿는다. 그리고 그 선한 아이를 망치는 건 자격 없는 부모라고 생각한다.

◇축구 국가대표 손흥민의 아버지인 손웅정 감독이 서울 강서구의 한 호텔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어떤 분야건, 기본기를 닦는 지난한 과정을 건너뛴다면 그 누구도 일류가 될 수 없다는 게 손 감독의 지론이다.

손흥민을 중학교 2학년 때까지는 경기를 뛰지 못하게 하고 볼 리프팅, 패스 등 기본기 훈련만 '죽어라' 시켰다.

손흥민은 혹독하게 훈련을 시키는 손 감독에게 '반기' 한 번 제대로 못 들었다고 한다. 왜냐면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손 감독은 학습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스스로 이루려고 하는 동기라고 본다.

동기가 없다면 고통을 이겨낼 수 없다. 그리고, 아이들이 동기를 가지게 하는 건, 바로 '꿈'이다.

손 감독은 손흥민에게 단 한 번도 축구하라고 말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저 자유롭게 놀게 해줬을 뿐이다.

학교에 무단결석하면서까지 손흥민 형제를 데리고 전국 곳곳으로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손 감독은 "많이 뛰놀면서 많이 보고, 많이 경험하다 보면 어떤 아이든 '이런 것도 있구나, 이걸 잘해보고 싶어. 내가 이건 잘할 수 있어' 하는 것을 찾게 된다"면서 "흥민이에겐 그게 축구였을 뿐"이라고 말했다.

유치원에도 의대반이 생길 정도로 의대 선호 현상이 극심하다. 이에 대한 생각을 묻자 손 감독은 흥분하며 "미친…"이라고 한 뒤 "아이의 재능은 '개무시'하고 당장의 성적에만 목매는, 자식을 '소유물'로 생각하는 부모들이 애들을 망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한국 사회가 '성공'의 정의부터 다시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손 감독은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며 10만원을 버는 것보다 재능이 있고 잘하는 일을 하면서 5만원을 버는 게 행복한 삶 아닌가"라고 말했다.

◇경기 지켜보는 손흥민-송웅정[연합뉴스 자료사진]

손 감독은 자신과 손흥민이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자부한다.

돈을 많이 벌어서가 아니다. 둘 다 '사랑하는 축구'를 최선을 다해서 하고 있기에 성공했다고 규정한다.

손 감독은 "손흥민을 '강자'로 키우려고 노력했고, 지금 나에게서 축구를 배우는 학생들도 강자가 되기를 바란다"면서 "강하다는 건, 돈이 많고 힘이 센 게 아니다.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아 나간다면, 그게 강한 거다. 난 그런 강자를 키우려고 노력해왔다"고 말했다.

참혹하게 무너진 교권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사건, 사고가 매년 쏟아지다시피 하고 있다.

손 감독은 이 문제 역시 '부모 탓'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엇나가는 모습을 보이면 부모가 확실하게 제재해야 하는데, 감싸고 돌며 과잉보호하고, 교사에게 책임을 미루다 보니 학교가 엉망이 됐다는 것이다.

그는 손흥민을 지도할 때 체벌까지 했다는 걸 예전부터 숨기지 않았다. 교육청, 경찰에 신고까지 여러 번 들어갔다고 한다.

손 감독은 "성서를 보면 '아이의 마음속에 어리석음이 자리 잡고 있다'는 구절이 나온다. 유대인들은 아직도 아버지가 자식을 체벌한다"면서 "체벌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아이에게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라고 정해줘야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는 끝까지 타협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손 감독은 체벌할 때는 '뚜렷한 기준'과 '사랑', 두 가지 전제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했다.

이제 축구를 가르칠 때 체벌은 하지 않지만, '욕'은 한다고 손 감독은 말했다.

손 감독은 "대충대충 살면, 이 세상에 설 곳이 없다. 생각하면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면서 "아이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애정을 전제로 깔고 이따금 '큰소리'를 친다"고 말했다.

손 감독은 "지도자라면, 아이들이 당장 지금이 아닌 성인이 됐을 때 경쟁력과 인성을 갖춘 선수로 만들기 위해 열정을 가지고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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