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소설 속 강원도]옴팍한 떡시루 같은 마을을 담아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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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김유정의 실레마을 배경 소설들

◇김유정 동상.

“나의 고향은 저 강원도 산골이다. 춘천읍에서 한 이십리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면 내닿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중략) 그 산에 묻힌 모양이 마치 옴팍한 떡시루 같다 하여 동명을 실레라 부른다.” 김유정이 1936년 5월 조광을 통해 발표한 수필 ‘오월의 산골짜기’에서 자신의 고향 실레마을을 묘사한 부분이다.

김유정이 남긴 서른두 편의 소설 가운데 그의 고향인 실레마을(춘천시 신동면 증리)을 배경으로 한 작품은 모두 열두 편에 이른다. 실레마을을 걷다 보면 실제 소설 속 장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경성 휘문고보 동창으로 김유정의 친한 친구였던 소설가 안회남이 김유정이 남긴 유품을 모두 들고 월북을 했기 때문에 실레마을은 김유정이 남겨 놓은 거의 유일한 문학적 유품이라고 할 수 있다. 김유정은 1930년 연희전문학교를 중퇴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후, 움막을 짓고 야학을 운영한다. 그 움막야학터가 실재한다. 소설 ‘안해’에서 “야학이란 요 산 뒤에 있는 조그만 움인데 농군아이에게 한겨울 동안 국문을 가르친다”라는 문장과 함께 등장한다. 이 야학은 나중에 야학당인 ‘금병의숙’으로 이어진다.

또 소설 ‘솥’에 나오는 들병이와 근식이가 장래를 약속하던 ‘실레마을 주막터’도 만나볼 수 있는데, 김유정이 자주 들러 코다리 찌개를 안주로 술을 마시던 곳이라고 한다. 솥에서는 이곳을 “길가에 따로 떨어져서 호젓이 놓인 집이 술집이다. 산모퉁이 옆에 서서 눈에 쌓이어 그 흔적이 긴가민가하나 달빛에 빗기어 갸름한 꼬리를 달고 있다. 서쪽으로 그림자에 묻히어 대문이 열렸고, 그 곁으로 불이 반짝대는 지게문 하나가 있다”고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소설 ‘봄·봄’ 에 나오는 봉필 영감 집터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실레마을에서 차를 타고 조금 내달리다 보면 덕돌네 주막터, 물레방앗간 자리에 다다를 수 있는데 이곳이 바로 김유정을 소설가로 데뷔시킨 소설 ‘산골나그네’의 배경이 된 곳이다. 그 주막터는 소설 속에서 한 밤중에 처음 보는 아낙네가 주뼛주뼛하며 “저어, 하룻밤만 드새고 가게 해주세유” 하며 찾은 곳이다. 비운(?)의 사내 덕돌의 어머니는 그 아낙네를 마음에 두고 아들과 혼례를 시켜버린다. 그런데 그 아낙네의 속셈은 다른 곳에 있었다. 어느날 밤 옷을 챙겨 달아나 버린다. 실은 아낙의 병든 남편을 물레방앗간에 몰래 숨겨 놓고 있었던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아낙네와 남편의 모습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똥끝이 마르는 듯이 계집은 사내의 손목을 겁겁히 잡아끈다. 별들은 몸이라 끌리는 대로 뒤툭거리며 거지도 으슥한 산 저편으로 같이 사라진다.” 남겨진 덕돌의 사정도 모르고 “수은빛 같은 물방울을 품으며 물결은 산벽에 부닥뜨린다”는 표현은 너무도 아릅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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