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소설속 강원도]‘몰락한 양반·무지한 천민’ 조선 후기의 역사를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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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박지원 '양반전'
정선 배경 한문 소설 집필
신분 사고파는 모습 풍자

◇박지원의 ‘양반전'이 실린 소설집 ‘호질·양반전·허생전'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1805년)에 대해서 아시는지. 조선후기의 실학자이자 소설가로 ‘열하일기’, ‘허생전’, ‘연암집’ 등을 저서로 남긴 인물이지만 그가 양양부사를 역임한 것도, 조선 정조 때 지은 한문 단편소설 ‘양반전’이 정선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점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양반전은 정확한 저작 연대를 알 수는 없으나 박지원의 초기 작품으로 분류된다. 박지원의 문집인 연암집(燕巖集) 방경각외전(放?閣外傳)에 실린 이 소설은 조선후기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몰락한 양반과 썩을 대로 썩은 관료, 무지한 천민 등의 모습을 해학적으로 그려냈다.

정선에 어질고 책읽기를 좋아하는 한 양반이 살고 있었다. 군수가 도임(到任·지방의 관리가 근무지에 도착함)하면 반드시 찾아가 예를 표할 만큼 덕망 높은 인물이다. 양반에게도 아킬레스건이 있으니 집안이 너무 가난하다는 것이다. 그래도 굶어 죽을 수는 없으니 관곡이라도 빌려야 하는 처지다. 그렇다고 양반의 상황이 쉽게 나아지지 않을 터. 그렇게 빌린 쌀은 빚이 되고, 빚은 쌓이고 쌓여 1,000석에 다다른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들은 관찰사의 레이더에 걸리고 만다. 당장 양반을 가두라는 관찰사의 불호령이 떨어졌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양반의 형편을 잘 아는 군수는 차마 그를 가두지 못한다. 허울뿐인 양반이라는 신분에 대한 양반 아내의 푸념이 이어진다. 그러던 중 마을 부자가 양반을 사겠다고 나선 것. 양반은 부자의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부자는 즉시 관곡을 실어나른다. 놀란 정선군수는 경위를 물으려 양반을 찾지만 이미 신분을 팔아버린 양반은 자신을 소인이라 칭하며 땅에 엎드려 감히 얼굴을 쳐다 보지도 못한다. 이 사실을 모두 알게 된 군수는 문권(文券·공적인 문서)을 만들어야 한다고 명을 내린다. 문권에는 양반이 지켜야 할 규율이 빼곡하게 적힌다. 부자는 이 문권을 보고 한쪽이 너무 손해라고 생각해 수정을 요구하며, 두 번째 문권은 양반의 사회적 가치와 그의 덕목을 더욱 강조하는 내용이 담긴다. 그러자 부자는 수정된 문권의 내용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시하고 결국 양반에 대한 모든 일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박지원은 방경각외전의 자서에서 이 소설의 저작 경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士)는 천작(天爵)이니 사와 심(心)이 합하면 지(志)가 된다. 그 지는 어떠하여야 할 것인가 세리(勢利)를 도모하지 않고 현달하여도 궁곤하여도 사를 잃지 말아야 한다. 명절(名節)을 닦지 아니하고 단지 문벌이나 판다면 장사치와 무엇이 다르랴 이에 ‘양반전’을 쓴다.” 박지원이 양반전을 쓴 이유를 간단히 정리하자면 이렇다. 선비란 하늘이 내린 벼슬이다. 권세와 이익을 도모하지 않고 명망을 얻더라도 선비의 지조를 떠나지 않고 궁해져도 선비의 지조를 잃으면 안 된다. 명분이나 절개를 지키지 않고 대대로 내려온 신분을 팔아버린다면 장사꾼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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