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설] 명예퇴임 조건부 승진, ‘新매관매직’은 아닌가

도내 지자체 5급 승진 인사 각서 받아 논란
공직사회 온정주의·연공서열 평가 만연
인사 적폐 걷어내고 환골탈태 계기 삼아야

도내 모 자치단체가 5급 사무관 승진 인사 과정에서 이른바 ‘명예퇴임 조건부 승진 합의 각서’를 받아 논란이 일고 있다. 해당 지자체 사무관 A씨는 2022년 12월 말 승진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 ‘사무관 승진을 하면 2024년 6월 말 명예퇴임하겠다’는 내용의 글이 적힌 서류에 서명했다. 또 다른 사무관 B씨는 2023년 말 사무관 승진 당시 다면평가 등의 문제로 승진이 곤란하지만 단기간 자리에 머문 후 퇴직한다면 해 주겠다는 암묵적인 메시지를 받고, 명퇴 신청서를 미리 냈다. 이처럼 조기 명예퇴직을 약속하는 대신 승진하는 것은 그동안 관행처럼 이뤄져 왔던 게 사실이다. 문제는 법적 효력도 없는 각서를 받고 인사를 하는 것이 공정하고 투명해야 할 인사권을 훼손하고 있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조기 명예퇴임 조건부 승진 인사가 신종 매관매직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자체의 불합리한 인사 시스템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당장 공로연수제도만 봐도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 행정안전부의 ‘지방공무원 인사분야 통합지침’을 보면 자치단체장은 업무 형편을 고려해 대상자를 선정하고, 이들이 재취업·창업·사회 공헌 분야에 진출토록 지원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에 따라 대상자는 “자발적으로 참여한다”는 내용의 형식적인 사전 동의 절차를 거치지만 으레 “좀 쉬러 간다”는 생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공직사회에서는 공로연수 기간에 관련 기능을 익혀 퇴직 후 재취업한 동료나 선배들을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연수 기간 별 하는 일도 없지만 월급은 꼬박꼬박 나온다. 일반 회사의 ‘무노동 무임금’과는 대조를 보이면서 ‘혈세 낭비’ 논란이 그치지 않은 까닭이다.

인사가 만사라고 하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다. 물론 모두가 만족하는 인사는 없지만 공직사회 인사 관행에 숱한 문제가 제기되는 상황이라면 업무 평가를 강화해야 한다는 데는 모두 공감할 것이다. 관건은 실효성이다. 도내 공직사회에는 온정주의적 평가와 연공서열 중심 평가가 만연해 있다. 지금껏 인사관리 원칙을 똑바로 적용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이제 도내 공직사회도 인사 적폐를 걷어내야 한다. 비정상적인 감싸주기 인사 관행을 척결하고 평가 투명성 제고 등을 통한 제도 정착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공직사회만 업무 평가를 외면하면 무사안일에서 벗어날 길을 찾지 못할 것이다. 지자체 공무원 인사도 도민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 올바른 공무원 인사는 사회 정의에도 부합한다. 불합리한 인사 관행을 철폐해 복지부동이라는 질타를 받아 온 공직사회가 환골탈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인사 때마다 정실 인사, 측근 인사, 밀실 인사란 성토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적임자를 선택하는 것은 인사권자의 재량이다. 그러나 인사권을 행하는 데에는 만인이 수긍할 절차와 투명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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