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소설 속 강원도]서울 보험회사 영업소장 소설 쓰러 태백으로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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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 한만수 '12월의 파비안느'

쇠락과 탈출 이미지 상존
탄광 있는 장성으로 이사
다양한 여성들과의 만남
위안·절망 등 감정 교차

소설 구성에 있어서 ‘장소성(場所性)’이 갖는 의미는 특별하다. 특정 장소에 대한 이미지, 인상 그리고 평가 따위가 분명 존재하는 상황에서 실재하는 공간을 소설 안으로 가져오는 것은 작가 입장에서는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섣부르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어 조심하는 경우도 많다. 소설가 한강이 자신의 첫 소설 ‘검은 사슴’의 배경이 된 탄광촌을 가상공간인 ‘황곡’으로 정한 것도 작품에 대한 선입견 유입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 아니었을까 싶다. 문학과 지리환경의 관계를 연구대상으로 한 ‘문학지리학’이라는 학문이 있는 것을 놓고 보면 문학과 장소는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 면에서 한만수의 장편소설 ‘12월의 파비안느’는 개인적으로는 노골적으로 특정 지역을 언급하고 있어 어딘가 모르게 편치 않은 구석이 있는 작품이다. 태백 장성이 바로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태백이 문학에서 장소성을 얻어 소비될 때, 보통은 탄광을 분모로 한 진폐나 사북항쟁 이슈 등과 짝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작품 속에 쇠락의 분위기는 상존하고, 탈출의 이미지는 고착화된다. ‘12월의 파비안느’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주인공이 태백으로 유입이 된다는 점은 색다르다.

소설은 나이 스물일곱의 주인공이 장성으로 가는 기차를 타는 것에서 시작된다. 보험회사에 다니는 그는 소설가가 되겠다는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로 나온다. 비록 홧김이지만 장성행을 자원한 것도 마음 한 편에 소설을 열심히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설렘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장성에 다다른 주인공은 방을 구하고 장성살이에 나선다. ‘서울에서 온 젊은 보험회사 영업소장’이 장성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정의된 주인공의 모습이다. 1980년 1월, 시골 동네에 나타난 멀끔한 서울 총각은 장성 사람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일 수 있었다. 장성에서 숙이네분식 사장 이영숙을 비롯해 스물다섯의 영업소 총무 이혜진 그리고 딸기밭에서 조우한 장성여고생 박순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부류의 여성들과 만남이 이어진다. 주인공은 마치 부초(浮草)처럼 이들 사이를 유영하는 일상을 보낸다. 새롭게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위안을 찾기도 하지만 외로움과 절망의 감정은 그의 내면에서 여전히 교차한다. 장성에서의 일상 속에서 내적 갈등과 성장을 겪는 주인공은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평온을 찾는 듯하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히며 고독과 혼란을 겪게 된다. 소설을 쓰겠다는 그의 의지는 술 한잔과 함께 옅어져만 간다. 그러는 사이 장성에서의 삶은 점차 그에게 불행으로 다가온다. 결국 오토바이 사고 이후 엄습하는 죽음에 대한 공포 앞에서 그는 장성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주인공이 소설 초입, 기차에서 듣게 된 보니 엠의 ‘원 웨이 티켓’ 가사처럼 ‘슬픔으로 가는 편도 차표 한장’으로 다다른 장성에서 그는 정말 절망을 맛본 것일까. 소설 책을 덮고 나니 주인공이 소설 속에서 수도 없이 마신 캡틴 큐의 맛은 과연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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