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정암사 적멸보궁을 스쳐 산을 오르다 보면 만날 수 있는 탑(塔)이 있다. 산비탈에 세워진 국보 ‘수마노탑’이 그 주인공이다.
1964년 9월 보물로 지정된 뒤 56년 만인 2020년 6월25일에 이르러 강원특별자치도 문화재 가운데 열세번째로 국보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수마노탑’은 고려시대 만들어진 ‘모전석탑(模塼石塔)’ 형식의 불탑이다. 전탑(塼塔·벽돌탑)을 모방한 모전석탑은 돌을 벽돌 모양으로 깎고 다듬어서 쌓아 올린 탑을 말하는데, 삼국시대 불교가 도입되기 시작할 때 목탑에 이어 지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634년(선덕여왕 3년)에 건립된 국보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을, 현전하는 대표적인 모전석탑으로 꼽을 수 있지만 ‘수마노탑’이 세워진 곳의 풍광이나 탑의 자태만 놓고보면 ‘제천 장락동 칠층모전석탑(보물)’이나 ‘영양 산해리 오층모전석탑(국보)’ 등 여느 모전석탑 쯤은 가뿐히 압도할 만큼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전문가들로 부터 “조형적인 안정감과 입체감은 물론이고 균형미까지 돋보이는 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수마노탑은 전체 높이가 9m에 달한다. 화강암 기단 위에 세워진 1층 탑신에 감실(龕室·작은 불상 등을 모셔둔 곳)을 상징하는 문비(門扉·석탑 초층 탑신부에 조각된 문짝)가 있고, 그 위로 정교하게 다듬은 모전(模塼·벽돌모양)석재를 차곡 차곡 포개서 쌓은 구조를 하고 있다. 모두 7개 층의 탑신부로 구성된 수마노탑은 각각의 지붕돌 끝이 살짝 들려있고 그 곳에는 풍경이 달려있다. 탑의 가장 높은 부분인 상륜부에는 청동으로 제작된 장식이 올려져 있어, 그 모습이 상당히 멋스럽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수마노탑’이 들어선 정암사는 신라 자장율사가 당나라 오대산에서 문수보살로부터 석가모니의 몸에서 나온 진신사리를 받아 귀국한 후 643년(선덕여왕 12년)에 창건됐다. 특히 정암사는 적멸보궁이 자리를 잡고 있어 오대산 중대, 영월 법흥사, 설악산 봉정암, 통도사의 적멸보궁과 함께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이다. 수마노탑이라는 이름은 불교에서 금, 은 등과 함께 칠보(七寶) 중의 하나인 마노(瑪瑙·agate)와 관련이 있는 것이라고 한다. 마노는 결정의 모양이 말의 뇌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자장율사가 진신사리를 가지고 귀국할 때 서해 용왕이 자장의 도력에 감화해 건내 준 마노석으로 탑을 조성했고, 물길을 따라 마노석을 가져왔다고 해서 물 ‘수(水)’ 자를 앞에 붙여 ‘수+마노+탑(水+瑪瑙+塔)’이 되었다는 것이다.
수마노탑은 파손이 심해 1972년 해체, 복원 작업이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탑지석 5개와 금·은·동 사리구가 발견됐는데 특히 탑지석에는 탑의 건립 이유와 수리 기록 등이 기록돼 있어 탑의 조성 역사와 기술을 연구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됐다. 이처럼 탑의 수리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경우는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국보)과 포항 법광사지의 삼층석탑(사적) 등으로 그 사례가 매우 드물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문화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 다보탑(이상 국보) 등과 함께 탑의 이름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희귀한 케이스라는 것도 수마노탑이 지닌 특징이라고 하겠다. 여기에 정암사와 수마노탑이 현존하는 적멸보궁 중 설악산 봉정암과 함께 석탑을 이용해 보궁을 형성한 사례로도 눈길을 끈다는 평가다.
사찰 안에 안전(?)하게 조성된 다른 탑들과 달리 경내를 벗어난 산 위 정암사 가람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장소에 조성된 ‘수마노탑’을 두고 전문가들은 9세기 말 등장한 ‘비보사상’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비보(裨補)는 풍수에서 ‘모자라는 것을 도와서 채운다’는 뜻을 갖고 있는데, ‘산천의 흉한 형세로 빚어지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황룡사 구층목탑을 건립’했다는 기록을 통해 황룡사 구층 목탑의 건립 이유를 추론할 수 있는 것 처럼 풍수적 이유가 상당부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수마노탑은 쇠퇴한 산천의 기운을 북돋운다는 ‘산천비보(山川裨補) 사상’과 사리신앙을 배경으로 높은 암벽 위에 조성된 특수한 석탑이라는 사실 그리고 탑지석 등을 통해 그 기록과 연혁을 알 수 있고, 모전석탑으로 조성된 진신사리 봉안탑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다는 점 등으로 이미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