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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 여행 라떼는 말이야]1971년 속초발 김포행 비행기 납북 미수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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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1월 대한항공(이하 KAL) 소속 비행기(F-27기)가 납북 위기를 모면하고 휴전선 인근 고성군 현내면 초도리 해변에 불시착한 모습. 강원일보 DB

1971년 1월23일 오후 1시 7분.

지금은 군용공항으로 활용되고 있는 속초공항(속초물치비행장)에서 김포공항을 목적지로 한 대한항공(이하 KAL) 소속 비행기(F-27기) 한 대가 활주로를 박차고 이륙한다. 이 비행기에는 승객 60명을 비롯해 이강흔 기장 등 5명의 승무원이 타고 있었다. 불과 1년여 전인 1969년 12월 강릉발 KAL 여객기가 납북되는 사건이 벌어진 터라 항공 보안관 최천일씨도 동행을 하고 있었다. 소한(1월6일)을 거쳐 대한(1월21일)으로 향하는 2주 간의 기간 동안 날씨는 그야말로 봄날 같았다. ‘겨울 속의 봄’이 당시 강원일보 날씨기사(본보 1971년 1월21일자) 제목이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20일 밤부터 내리던 비가 눈으로 바뀌면서 영동지역의 교통과 통신은 이틀간 마비(본보 1971년 1월22일자)된다. 공항도 예외는 아니어서 KAL기 결항과 함께 명태잡이 어선도 발이 묶여버린다. KAL F-27기가 속초공항을 떠난 그날은 모처럼만에 하늘길이 열린 그런 날이었다. 그나마 낮 12시50분에 이륙할 예정이었지만 활주로에 쌓인 폭설로 인해 10여분 늦게 출발하게 된 것이다. 승객들은 그야말로 아슬 아슬하게 티켓을 구하면서 운좋게(?)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맑은 날씨, 파란 하늘을 가르며 비행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적어도 28분 동안은 말이다.

◇1971년 1월 납북 위기를 모면하고 휴전선 인근 고성군 현내면 초도리 해변에 불시착한 대한항공(이하 KAL) 소속 비행기(F-27기). 강원일보 DB

이날 오후 1시 35분.

비행기는 대관령을 지나 홍천 상공에 다다른다. 고도는 1만 피트(약 3,000미터). 이 때 비행기의 오른쪽 두번째 좌석 창문에 앉아 있던 앳된 얼굴의 한 남자가 담배를 피워 물고는 비행기 복도로 뛰쳐나온다. 그리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폭탄을 던져버린다. 이내 번쩍이는 섬광, 요란한 폭음과 함께 비행기 안은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조종석으로 뛰어들어간 그 남자는 조종사를 위협하며 비행기의 기수를 북으로 돌리라고 소리친다. 최근 개봉한 하정우, 여진구 주연 영화 ‘하이재킹’의 모티브가 된 ‘속초발 김포행 비행기 납북미수사건’ 은 그렇게 시작된다. 순식간에 비행기를 장악한 이는 고성군 거진 출신의 스물두살 청년 김상태였다. 기장은 재빠르게 비행기가 납치 당했음을 알린다. 입에 칼을 물고 또다른 폭탄을 손에 든 채 대치한다. 그리고 승객들을 향해 “돈주고도 못할 평양 구경을 시켜줄테니 가만히 있으라”고 윽박 지른다. 기장의 SOS 신호는 부산을 떠나 김포공항으로 가던 KAL 131편에 포착된다. 항공사는 이 사실을 알리게 되고 공군 전투기(F-5A) 2대가 긴급 출동한다. 이때는 강릉공항 비상 착륙에 실패한 비행기가 해안선을 따라 북상을 시작했을 때다.

◇영화 하이재킹의 한장면.

이제 곧 휴전선을 넘을 수도 있는 일촉즉발의 순간, 우리 공군 전투기의 위협사격이 시작된다. 조종사는 범인 김상태의 흥분을 가라 앉히기 위해 비행기가 이미 북한으로 넘어왔고, 북한 전투기가 포위하고 있으니 착륙시켜야 된다고 말한다. 범인은 외부 상황을 살피기 위해 창 밖을 바라본다. 그 순간, 항공 보안관 최천일씨의 총구가 불을 뿜는다. 범인은 그대로 쓰러지고, 이 모습을 지근 거리에서 지켜보던 수습조종사 전명세씨는 쓰러진 범인을 완전히 제압하기 위해 덮치는 과정에서 폭탄 터지면서 심각한 부상을 입게 된다.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전명세씨의 활약으로 비행기의 손상과 승객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범인 김상태가 숨을 거뒀지만 비행기는 엉망이 된 상태에서 여전히 비행중이었다. 비행기를 안전하게 착륙시킬 활주로는 모두 지나친 상태. 조종사는 목숨을 걸고 비상착륙을 시도한다. 휴전선을 불고 10여km 남겨 놓은 지점. 승객들을 태운 비행기는 고성군 현내면 초도리 해변의 백사장에 미끄러지 듯 동체 착륙한다. 이 과정에서 비행기는 명태 덕장에 부딛혀 프로펠러와 날개가 떨어져 나가는 등 큰 충격을 받는다. 악조건 속에서도 착륙은 성공이었다. 조종사의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명태 덕장은 비행기가 바다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막는 완충제 역할을 했던 것이다. 기적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말그대로 구사일생이었다. 참사를 막은 보조 조종사 전명세씨는 끝내 목숨을 잃게 되고 그의 유해는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 범인 김상태가 중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할 만큼 머리가 좋았다는 사실과 그의 형이 월북했다는 등의 사실이 후에 알려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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