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년 5월, 배우 허준호가 뮤지컬 ‘갬블러’ 홍보를 위해 일본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예정된 기자회견이 있었는데 일본 기자가 뮤지컬 홍보와 전혀 관계없는 외교적 질문을 문뜩 던졌다. “허준호씨, 최근 한국과 일본 간에 독도 문제가 큰 이슈가 되고 있는데, 대한민국의 스타로서 어떤 견해를 가지고 계신가요?” 활기차던 기자회견장은 일시에 물을 끼얹은 듯 숙연해졌다. 때마침 드라마 ‘올인’이 일본에 방영돼 얼굴이 알려지기 시작한 터였다. 일본 국민의 정서와 비위를 맞추고, 눈치를 봐야 하나 고민이 될 법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남달랐다. 그는 그 질문을 던진 기자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그의 볼펜을 확 빼앗아 버리고 물었다. “기분이 어떠세요?” 까닭 없이 자신의 것을 빼앗긴 기분을 느껴보라는 뜻이었다.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감정을 사심 없이 표현한 담대한 행동이었다. 일순 취재진은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일본 기자는 곧바로 “미안합니다. 볼펜을 돌려주세요”라며 사과했다. 허준호의 신념과 소신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소신은 불이익을 받을 것이 예상돼도 자신의 신념과 의견을 떳떳하게 밝히는 데 있다. 사람는 누구나 소신을 갖고 있다. 그 소신을 스스로가 굳게 믿고 있는 신념이다. 신념이 커지면 누구나 의미 있는 큰일을 도모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에게 굉장히 중요한 게 바로 마음이다.
좋아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그 일을 하고 싶은지 하기 싫은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본인이 좋아하는 일이라면 비록 오랜 시간일지라도 1시간처럼 빠르게 느껴질 것이고, 싫어하는 일이라면 1시간도 24시간처럼 길게 느껴진다. 이러한 것은 업무이든 일이든 동일하게 적용된다. 부동심(不動心)에 관한 이야기가 맹자(孟子·B.C 371~289년) ‘공손추편(公孫丑篇)’에 나온다. 한문을 풀이하면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역으로, 마음이 흔들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평정심을 잃고 줏대 없이 행동하는 것이다. 자신의 곧은 심지 없이 이 사람 말에 떠밀리고, 저 사람 얘기에 휘둘리는 것이다. 결국, 맹자가 말하는 것은 세상의 유혹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의 뜻을 굳건히 하라는 것이다.
인생의 뿌리는 굳은 신념에서 비롯된다. 군중들의 어떤 말에도 현혹되지 않고 나를 다잡아 줄 수 있는 근간. 만약 신념이 없다면 시대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이리저리 떠도는 뿌리 없는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신념을 갖고 그 목표된 삶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인생사에서 중요한 지표가 된다. 단지, 다른 사람의 신념도 존중하면서 자신의 신념이 올바른지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허준호씨의 신념도 끊임없는 연단의 결과물인 셈이다.
전국적 흐름이긴 하지만, 요즘 폭염만큼이나 강원지역 경제도 우여곡절을 겪고 있다. 전문가 그룹은 내수 부진의 요인을 경제 불확실성, 고금리와 고물가로 진단하고 있다. 농촌도 ‘처서’가 지나면 결실 예측이 가능한데 작황은 평년과 사뭇 다르다. 강원지역 경제가 직면한 위기를 좋은 정책, 금리 인하, 소비 진작 등 선순환 체제로 바꾸어 갔으면 좋겠다. 무더운 여름 모두가 지치고 힘들지만, 허준호 배우의 호탕한 재치와 신념처럼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 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