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를 통해 국회는 입법 기능 이외에 정부 업무 전반을 감시, 비판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지난 주 많은 정부 부처의 업무에 관해 국정감사가 시작되었지만 여야 모두 정쟁에 더욱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바로 몇 달전 총선에서 민생을 중시하겠다는 여야 의원의 외침이 무색해질 정도였다.
더욱이 실망스러운 것은 국회의원들의 태도이다. 고성을 지르며 피감기관의 공직자들을 윽박지르거나 혼내는 모습을 보고 싶은 국민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 국회의원이 도덕적 우위가 있다고 생각할 국민도 없을 것이다. 각 상임위에 속한 국회의원들은 업무를 파악하고는 있는가? 피감기관에 던지는 질문을 듣고 있자면, 이들이 과연 각 상임위가 다뤄야할 쟁점과 현안을 인지하고는 있는지 매우 의문스럽다. 몇 시간을 대기하며 그러한 질문에 답을 해야하는 각 부처 공직자들은 허탈할 것이다. 저급한 언어를 구사하는 국회의원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국악인을 향해 “기생”이라고 표현한 모 국회의원의 태도는 국민들로 하여금 국회의원에 대한 기대를 접기에 충분했다. 어떻게 이런 인물들이 우리 국민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도대체 우리가 국회와 국회의원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국회의원은 국민 위에 존재하지 않는다. 입법부가 행정부 위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현재의 국회는 4년 임기 국회의원들이 모여있는 정치투쟁의 ‘닫힌’ 공간으로 전락했다. 이들의 투쟁 목표는 권력 획득일뿐 국민의 이익과 괴리되어있다. 입법과 사법, 행정을 분리하여 상호 견제함으로써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고자 했던 삼권분립의 원칙은 이미 실종된 듯 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와 김건희 여사의 의혹 공방, 여소야대 속 이념적 양극화된 정치 지형 등, 정쟁의 양상과 수위가 나날이 높아지는 상황 속에서 각 부처 정책들은 추진될 수 있을지, 정책을 입안하는 의미가 있을지, 의심스럽다. 물론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묵묵히 자기의 위치에서 해야할 일을 하고 있는 분들이 있기에 대한민국이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몇 달 남지 않은 2024년과 내년 2025년은 대내외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올해 초 모든 미디어가 떠들썩하게 보도했던 2024년 전세계에서의 선거 일정, 이로 인한 국제질서 지각변동 논의에 대해서도 모두가 잊은 듯 하다. 이번 국정감사 외통위에서 이와 관련해 질문한 국회의원은 고작 한 두명 뿐이었다. 국제질서는 한국이 대응하기 어려울 정도의 속도와 폭으로 변화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에서의 분쟁도 내년에는 어느 정도 협상 국면에 접어들 것이고, 미국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승리하든,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이 승리하든 경제안보 영역에서 한국은 더욱 높은 파고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중국과 러시아, 북한의 협력 폭은 단순히 동북아에만 국한되어있지 않으며, 이들은 협력뿐만 아니라 지역별 경쟁 구도도 보여준다.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과학기술은 어떠한가? 한국은 올해 사이버안보와 인공지능, 신흥기술과 관련한 규범적 리더십을 형성하기 위해 다수의 회의를 주재하며 국제사회 속 한국의 자리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성과를 더욱 지속가능하게 하기위해 국회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여전히 일부 국회의원들은 한미일과 북중러의 구도 속에 한국이 냉전적 갈등의 피해자가 될 것이라 오해하고 있다. 이들의 인식은 여전히 한반도에 국한되어 있으며 이러한 인식은 그야말로 한국을 동북아 어딘가의 ‘은자의 나라’로 전락시킬 것이다. 한국이 헤징을 한다고 해서, 한국이 호의를 보인다고 해서 동북아 현상변경 국가들은 한국을 예외적으로 대할 가능성은 낮다. 글로벌 전략경쟁의 시대이다. 동북아 전략경쟁 시대가 아니며, 한국은 이 파고를 넘기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국제사회에서 스스로의 입지를 만들어야할 것이다. 그러나 국내적 정쟁에 골몰하는 국회의원들에게는 너무나 무의미한 조언일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