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일보 창간 79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79주년이라는 긴 시간 속에는 그곳에 잠시 존재해 있었던 기억부터 떠오른다. 1960년대 대학을 막 졸업하고 어찌어찌한 연고로 강원일보 기자가 되고 싶다는 야심으로 응시원서를 냈다. 무엇을 주제로 썼는지, 무엇이 문제제시였는지 잘 생각이 안 나지만 남성 2명과 함께 합격통보를 받고 입사했다. 1964년 4월19일 편집국 견습기자로 입사 후 국장님, 부장님의 눈치를 보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 주된 일은 대부분 교열을 보는 일이었다. 그 때의 일화 한 토막, ‘아뭏든’이란 단어를 두고 우리 부장님은 ‘아믛든’이라고 ㅁ 아래에 ㅡ(으)를 써야 된다고 했고, 나는 입술소리(순음)ㅁㅂㅍ 아래서는 ㅜ를 써야 된다고 국문과에서 배운 이론으로 맞섰다. 지금 같으면 서로 옳거니 그르거니 할 필요도 없이 원하는 글자를 클릭만 하면 해결될 문제다. 그러나 당시는 문선공들이 기자가 쓴 기사의 글자를 뽑아서 기사박스(활자통)에 채우던 때다.
원시시대 같은 시대를 거쳐 오늘의 ‘강원일보사’는 하늘만큼 높아진 위치에 우뚝 서서 우리 도민들의 귀가 되고, 눈이 되고, 입이 되는 역할을 다하고 있다. 지방화가 곧 세계화라는 캐치프레이즈로, 강원특별자치도의 특성화 기사로 세계화의 선두에서 그 업적을 이뤄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업적을 이루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몇 가지만 되짚어 보겠다. 2년 전 평창에서 노벨평화상 수상자와 47개국의 청년 1,000여명이 참여한 ‘노벨평화상 수상자 월드서밋 강원’이라는 세계적 행사를 마련하면서 타 도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획기적 업적을 이뤄냈다. 강원일보는 지역 언론으로서는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초대형 국제행사로 세계만방에 그 이름을 떨쳤다. 이 업적으로 지난달에는 월드서밋 사무국의 초청으로 멕시코 행사에 참여해 박진오 사장이 노벨평화상 수상자 등 2,000여명의 참석자들 앞에서 개막 연설을 함으로써 강원특별자치도와 강원일보의 위상을 다시 한번 만방에 떨치는 쾌거를 이뤘다. 강원도의 노벨상이라고 부르는 ‘동곡상’은 또 어떤가! 문화예술인들은 물론, 다양한 분야의 수상자를 배출하면서 도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특종 사업 중의 하나다. 또 가장 의미가 있고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로 기록할 만한 업적이 있다. ‘오대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과 의궤’의 환지본처를 주도한 일이다. 실록과 의궤를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 강원일보와 월정사가 공동으로 환수위원회를 결성, 약탈된 지 110년 만에 실록과 의궤의 제자리찾기에 성공해 평창에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이 설립된 것은 오롯이 강원일보사의 공(功)이며 큰 업적이다. 문화적 업적으로는 70여 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신춘문예를 비롯해 근래에 제정한 DMZ문학상이 있다. 유일한 분단국가, 분단도의 아픔과 상황을 문학의식으로 고취시키고자 제정한 것으로 전국에서 유일무이한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 ‘만해 전국고교생 백일장’은 만해 과거 시험이라고 할 만큼 그 위상을 떨치고 있다. 또 ‘시니어문학상’은 고령화 사회의 시니어들에게 새로운 삶의 계기를 마련해 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발군의 사업이다.
강원일보가 이뤄낸 수많은 업적 중에서 글을 쓰는 한 사람으로서 문학과 문화적 업적을 위주로 축하의 마음을 담아 살펴보았다. 앞으로도 더욱 새로운 안목과 귀와 발로 새 역사의 장을 열어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내 영혼의 집, 강원일보의 도약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