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원주 법천사 터에 다시 뿌리내리게 된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은 고려 불교 미학의 결정체이며, 석조 예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다.
단순히 종교적 의미를 넘어선 이 탑은 고려 시대의 예술적 성취와 철학적 깊이를 상징한다.
탑의 정교한 조각과 독창적 구조는 천년이 지난 지금도 현대인의 감탄을 자아낸다.
지광국사탑은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 우리의 뿌리를 되새기고 미래를 꿈꾸게 하는 상징이다.
그 아름다움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오늘날에도 우리의 마음속에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
◇지광국사 해린과 법천사지=지광국사 해린(984~1070년)은 고려 문종 시대에 왕사와 국사로 활동하며 불교를 통해 국가의 안정을 도운 승려다. 본관이 원주인 그는 법천사에서 출가해 중앙 불교계에서 활약했다. 대장경 판각 사업을 주도하며 불교 발전에 기여한 그는 고려 중기의 불교 사상과 학문의 중심에 있었다. 법천사는 해린의 삶과 깊이 연관된 사찰로, 남한강 유역이라는 지리적 이점 덕분에 경제적·문화적 중심지 역할을 했다. 해린이 입적한 후 제자인 소현은 그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1085년 법천사에 승탑을 세웠다. 이는 고려 불교의 이상을 담은 예술적 기념물로 완성됐다.
◇지광국사탑의 독창적 아름다움=지광국사탑은 팔각원당형이라는 전통적인 승탑 양식을 탈피해 방형 평면 구조를 채택한 점에서 독특하다. 높이 5.25m의 웅장한 규모와 정교한 조각은 그 자체로 불교 예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탑은 상륜부, 탑신부, 기단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부재가 독립적이면서도 조화로운 구성을 이룬다. 상륜부는 보주와 보개, 앙화로 이뤄져 있으며, 불교적 우주관을 상징하는 요소들로 장식됐다. 보주는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화염문을 새겨 넣어 우주의 중심을 시각화했으며, 보개의 모서리에는 날개를 편 가릉빈가가 정교하게 조각돼 있다.
탑신부는 중앙에 사리공을 품고 있으며, 사방의 불좌상은 각기 다른 부처를 묘사한다. 약사불과 아미타불 등 불좌상의 섬세한 표현은 당시 석공들의 뛰어난 조각 기술을 보여준다. 옥개석에는 하늘로의 비상을 상징하는 새들이 날개를 펼친 모습으로 조각돼 있다. 기단부는 또 다른 백미다. 상층기단에는 사리봉송 장면, 산수문, 운룡문 등이 생동감 있게 새겨져 있다. 남면의 사리봉송 장면은 당시 승려와 백성들이 함께 사리를 운반하는 모습을 묘사하며, 해린의 업적을 기리는 역할을 한다. 이 모든 조각들은 종교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동시에 석조 예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역사의 굴곡 그리고 기나긴 귀향 여정=지광국사탑은 수많은 역사의 굴곡을 겪었다. 조선 후기 법천사가 폐사된 이후 탑은 방치됐다. 이후 서울 명동(1911~1912년)과 일본 오사카(1912년)를 거쳐 경복궁 경내(1912~2016년)에 있다가 오랜 세월 훼손된 탓에 보존처리를 위해 2016년 해체돼 국립문화유산연구원(대전 유성구)으로 옮겨졌고 이후 이곳에서 2020년까지 약 5년간 부재 29점에 대한 보존처리를 받은 끝에 지난해 8월 부재 상태로 원주 법천사 터로 옮겨가면서 긴 유랑을 마무리했다. 지난해 12월 복원 위치가 원주의 법천사지 유적전시관으로 확정된 이후 국립문화유산연구원 문화유산보존과학센터는 올 8월부터 약 3개월간 유적전시관 내에 탑의 하중과 지진 진도 7의 충격에도 버틸 수 있는 면진대(免震臺)를 설치하고, 그 위에 높이 5.39m, 무게 39.4톤에 달하는 탑을 올릴 수 있었다. 국가유산청은 이를 두고 1,975㎞에 달하는 길고 긴 유랑생활이었다고 밝혔다.
◇고려의 문화유산, 오늘날의 의미=지광국사탑은 단순히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고려 불교의 이상과 석조 예술의 정수를 담아낸 기념비다. 이 탑은 천년이 넘는 시간을 거쳐 오늘날에도 그 아름다움과 가치를 잃지 않고 있다. 지광국사탑의 정교한 조각과 독창적 구조는 당시 고려인의 미적 감각과 종교적 열망을 생생히 전달한다. 이 탑은 한 시대의 철학과 예술적 성취를 넘어, 우리의 정체성을 되새기고 미래를 향한 영감을 제공하는 살아 있는 상징이라고 감히 평가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