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2023년 8월) 세상을 떠난 소설가 강기희의 이력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던 중 알 수 없는 서글픔의 감정과 마주하게 됐다. 그의 소속 란에 쓰여진 ‘전 소설가’라는 표현. 생경함에서 몰려드는 어색함의 일단일 수도, 아니면 그의 마지막 소설을 읽고 난 후에 느껴지는 슬픔과 헛헛함이 뒤섞인 감정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어쨋든 어떤 사람이 죽음을 맞이했다고 해도 전 사람이나 전 인간이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는 없지 않은가.
지난 주말 강기희의 유고소설 ‘겨울동화’를 읽었다. 그의 아내 유진아가 삽화를 그렸으니 그 특별함이야 더 말하면 무엇하겠는가. 그 사연을 알기에, 소설읽기는 먹먹함 속에서 시작됐다. 소설이 그가 터를 잡은 정선 덕산기계곡을 배경으로, 그것도 책방을 선명하게 그리고 있으니 더 그랬던 것 같다. 그 곳은 소설가 강기희에게 있어 단순한 고향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어린 시절 도깨비 이야기가 맴돌던 신비로운 공간이자, 아내 유진아 씨와 함께 쌓아 온 소중한 추억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일단 소설 속으로 들어가보자. 한 겨울, 폭설이 내린 외딴 골짜기의 책방에서 부부는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아내는 검은 고양이 눈바를, 남편은 물매화 플로라를 눈 조각으로 만들어 마당을 꾸미며 동화 같은 풍경을 만든다. 부부는 자연 속에서 작은 기쁨을 누리지만, 밤이 깊어지자 도깨비 철학자 단테가 찾아오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단테는 도깨비 왕국이 뿔깨비 고블린 왕자에게 점령당했고, 도깨비들이 노예로 전락해 황금을 캐고 있다는 비극적인 소식을 전한다. 뿔깨비 고블린 왕자는 평화를 가장하며 도깨비 왕의 신뢰를 얻은 뒤 궁을 공격해 마법을 봉인하고 왕과 공주를 감옥에 가뒀다.
단테와 눈바, 플로라는 도깨비 왕국을 구하고 평화를 되찾기 위해 행동에 나선다. 눈바와 플로라는 책방에 있는 도깨비 역사와 전설을 연구하며 왕국을 되찾을 방법을 모색한다. 단테는 도깨비 동굴의 지도를 그리며 왕과 공주가 갇힌 지하 감옥으로 향하는 길을 계획한다. 그러나 감옥으로 가는 길은 죽음의 호수와 가파른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뿔깨비들이 강력한 무기와 엄격한 경비로 지키고 있어 진입이 쉽지 않다. 눈바와 플로라, 단테는 서로를 격려하며 위험을 감수하기로 한다. 단테가 절벽 경비를 처리하면 눈바와 플로라가 호수를 건너 감옥에 접근하는 대담한 계획이 세워진다.
이 과정에서 눈바와 플로라는 평화와 용기의 의미를 되새기며 함께 협력한다. 도깨비 왕국의 평화를 깨뜨린 뿔깨비 왕자와 그의 군대는 탐욕에 눈이 멀어 자연과 공존하지 못하고 파괴를 일삼는다. 반면 눈바와 플로라, 단테는 서로의 지혜와 힘을 나누며 어려움을 극복하고, 마침내 도깨비 궁은 평화를 되찾게 된다. 이처럼 눈바와 플로라가 도깨비 나라에서 겪는 다양한 사건들은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흥미진진한 모험의 세계로 이끈다.
실제로 강기희는 덕산기계곡에 위치한 책방을 운영하며 아내와 함께 해마다 눈 고양이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겨울동화’를 통해 어릴 적 추억이 서린 덕산기계곡의 아름다움과 아내와의 소중한 일상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책방과 눈 고양이, 그리고 작가의 말에서 드러나는 부부의 모습은 실제 작가 부부의 삶과 닮아 있어 더욱 특별한 감동을 선사한다.
강기희 스스로 “슬프고도 아름다운 어른들의 동화”라고 표현한 이 작품은 어른들의 삶 속에서 마주하는 슬픔, 아름다움, 그리고 그 안에 담긴 희망을 모두 담아내고 있다. 동화라는 형식을 빌렸지만, 그 안에 담긴 철학적 성찰과 감정은 어른들의 깊은 공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해 보인다. 슬프도록 찬란하고, 또 아름다운 그런 양가의 감정을 피어오르게 하면서 말이다. 그런 작품을 쓴 강기희를 이제 그냥 소설가로 되돌려 놓아야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