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지역의 따뜻한 마음들이 모여 조성된 수십억원의 기부금이 어려운 이웃과 재난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오랜 시간 잠자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이다. 2016년부터 2024년까지 강원도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각 시·군을 통해 특정 대상에게 전해 달라며 지정된 기탁금 중 무려 78억원이 아직까지 쓰이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현실은 기부의 숭고한 의미를 퇴색시키고 도움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는 행위와 다름없다. 연평균 180억원에 달하는 소중한 성금이 강원도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모금되고, 그늘진 곳에 사용되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일이다.
그러나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거액이 집행되지 않고 묶여 있다는 사실은 납득하기 쉽지 않다. 고액 후원금의 경우 기부자의 뜻에 따라 여러 해에 걸쳐 분할해 전달하는 사례가 있을 수 있지만 2만원의 소액부터 수억원에 이르는 거액까지 다양한 액수의 지정 기탁금이 장기간 방치되고 있다는 점은 단순한 행정 처리 지연으로 치부할 수 없다. 매년 사용 기간을 연장하는 방식으로 기금을 누적시켜 온 그간의 안일한 대처는 기부금을 빠르게 필요한 곳에 전달해야 할 책임을 방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정 기탁금이 제때 쓰이지 못하고 금고 속에 있는 이유는 모금회와 각 지방자치단체의 소극적인 행정 처리 방식에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다. 기부금을 전달받아 관리하고 집행해야 할 책임이 있는 각 기관들이 적극적으로 대상자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더욱이 선의로 기부한 기업의 관계자가 기금이 이월되거나 다른 목적으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증언은 기부금 처리 과정과 소통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귀한 기부금이 진정으로 불우 이웃들에게 지체 없이 전달되기 위해서는 낡은 관행을 벗어나 적극적인 행정과 투명한 소통을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특히 기부자와 시·군이 협의해 지원 대상과 용도를 명확히 정해야 집행이 가능한 지정 기탁금의 경우 기부금의 현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체계적인 관리·감독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누가, 언제, 얼마를 기부했고 그 기부금이 어떤 과정을 거쳐 누구에게 전달되었는지 정확하게 추적하고 공개할 수 있어야 한다. 강원도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지정 기탁금의 조속한 집행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잔여금의 임의 사용이나 이월 과정에서의 절차 위반 등 위법 행위는 없었다고 주장한다.
물론 위법 행위가 없었다는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법적인 문제가 없었다고 해 모든 책임에서 자유로워질 수는 없다. 기부금은 궁핍한 이웃들의 삶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마련된 소중한 자원이다. 이러한 기금의 짜임새 있는 관리와 신속한 집행은 모금 기관의 기본적인 책무이자 사회적 신뢰를 구축하는 핵심 요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