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햇살이 들판을 비춘 지난 봄날, 홍천군 화촌면 송정리의 손탁 커피에 앉았다. 동네 의원이었던 오래된 건물을 개조해 만든 공간에는 커피 기계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핸드 드립 전문 로스터리 카페였지만 메뉴판에는 케냐, 브라질, 에티오피아 등 익숙한 단어도 없었다. 대신 꽃, 고집, 아버지, 신촌, 바다, 깊은밤, 겨울숲, 잘자 등이 있었다. ‘이게 뭐지?’ 싶었다. 봄인 만큼 ‘꽃’을 골랐다. 커피잔과 함께 작은 카드가 나왔다. 분홍색, 주황색 꽃이 수채화로 그려진 작은 그림이었다. 눈은 벌써 봄을 느꼈다. 산미가 높고 바디감은 가벼운 커피를 마시니 ‘꽃’이란 이름이 왜 붙여졌는지 알 것 같았다.

■미술 전공 창업자, 커피 맛을 그리다=손탁 커피는 2012년 서울 서교동에서 시작됐고 파주, 고양, 망원, 홍천에 4개의 직영점이 있다. 손탁은 조선 고종에게 커피를 처음 소개한 독일계 여성인 마리 앙투아네트 손탁(Marie Antoinette Sontag)에서 따왔다. 홍천점은 2022년 가을에 문을 열었다. 서울 출신으로 미술을 전공한 창업자 차두환(44)씨는 아예 홍천점 인근에 자택을 두고 터를 잡았다. 그는 “서울에 즐길거리, 볼거리가 많다고 하지만 이는 콘텐츠 소비자의 시각”이라며 “콘텐츠 생산자 시각에서 보면 홍천 같은 지방 소도시에 ‘재료’가 더 많아 보인다”고 말했다. 손탁 커피의 시그니처 블렌드 8종(꽃·고집·아버지·신촌·바다·깊은밤·겨울숲·잘자)은 미술을 전공한 창업자의 손을 거쳐 만들어졌다. 곡물의 단맛, 구수한 맛이 느껴지는 커피에는 ‘아버지’란 이름을 붙였고 1980~1990년대 뿔테 안경을 쓴 아버지의 얼굴이 투박하게 그려진 그림 카드가 함께 나온다. 산미가 높고 달콤함이 강한 커피에는 ‘바다’란 이름을 붙였고, 모래와 가깝고 먼 바다의 푸른색이 그려진 그림 카드가 함께 나온다. ‘잘자’는 예상한 그대로, 디카페인이다.

■농촌 속 카페, 낡은 공간을 살리다=손탁커피 홍천점 분위기는 ‘앤틱, 빈티지’로 요약된다. 기계 소리가 들리지 않는 수작업, 창업자가 오래된 느낌을 살려 만든 나무 테이블, 라탄 의자, 낡은 피아노 등이 있다. 논과 밭, 산으로 둘러싸인 시골 마을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공간이다. 이 공간은 새로운 변화를 앞두고 있다. 손탁커피 홍천점은 올해 중소벤처기업부 등이 마련한 ‘로컬크리에이터 육성사업’에 최종 선정됐다. 지역 고유의 자원을 활용해 창의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사업이다. 그 결과물로 준비 중인 것이 홍천의 쌀과, 잣, 오미자로 만든 커피 메뉴다. 차두환 대표는 “커피는 기후 변화에 가장 민감한 작물이어서 세계 주요 산지의 생산량이 점점 감소하고 있다”며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지역 농산물과 커피의 조합을 시도하고, 시장을 개척하려 한다”고 말했다. 홍천 농산물을 넣은 블렌드 커피는 올 하반기에 맛볼 수 있다.
손탁커피 홍천점은 다음 달부터 토마토 등 지역 농산물을 직접 판매하는 매대도 운영한다. 나무 상자가 층층이 올려진 매대는 이미 입구에 설치됐고, 농산물이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다. 농산물 콘텐츠 제작사인 밭밭과 협업한다.
손탁커피 2층은 올 가을부터는 문화 공간으로 운영된다. 핸드 드립 클래스, 미술 작품 전시회, 전문가 강연 등이 개최 될 계획이다. 지역 주민과 외지인 간의 연결을 만드는 로컬 플랫폼을 지향한다. 손탁커피 홍천점은 카페를 넘어 ‘홍천다움’을 찾아 나가는 문화 공간으로 진화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