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법정칼럼]“안타깝지만, 원고가 졌습니다.”

김민욱 춘천지방법원 판사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안타깝지만 원고가 졌습니다).”

2022년 말 한 판사가 판결문의 결론 끝에 괄호를 달았다. 판결문의 결론인 ‘주문’을 부연하는 괄호 속 평범한 12글자의 여운은 길었다. 우리 사법 역사상 처음 시도된 '이지리드(Easy-Read)' 방식 판결문의 첫 문장이다.

당사자는 청각장애인 A씨. 장애인 일자리사업 불합격처분 취소를 구한 사건에서 그는 “제가 이해하기 쉬운 용어로 판결문을 써 주세요.”라는 탄원서를 제출한다. 이 단순하고 분명한 요청은, 그간 법원의 언어가 얼마나 국민의 언어와 멀어졌는지를 보여준다. 판결은 그저 판결일 수 없다. 그것은 한 사람의 권리에 대한 응답이다.

필자는 법관으로서, 특히 청각장애인 부모님의 보살핌 속에서 성장한 자녀로서 이 변화가 갖는 의미를 남다르게 받아들였다. 어디 송사 없는 집안이 있겠는가. 법원에서 날아온 서류를 마주하자 부모님은 침묵했다. 어려운 법률용어 사이에서 길을 잃었던 순간이었다. 이해할 수 없을 때, 우리는 말을 멈춘다. 법관으로 일하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법의 문턱은 쉽게 넘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절감한다. 하물며 부모님에게 그 문턱은 넘을 수 없는 장벽이었을 터였다.

법은 선언이자 설명이다. 특히 판결문은 법원이 재판 당사자에게 자신의 결정을 전달하는 공식 문서이자, 법의 판단 근거를 서술한 최종 설명서다. 물론 판결문은 일정한 형식과 그 언어의 정밀함, 법적 논증의 정합성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당사자의 ‘이해’를 전제로 하지 않으면 공허해진다. 판결의 결론은 법원이 국민과 나누는 대화의 최종 산물인데, 대화 내용이 이해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설명이 아니라 통보이며, 소통이 아니라 배제다. 이는 곧 재판에 대한 수용, 신뢰와 직결된다.

지난 2월 사법정책연구원이 발간한 『장애인 등을 위한 이해하기 쉬운 판결서 작성방안』은 이러한 문제의식에 응답한 결과물이다. 발달장애인, 청각장애인, 아동·청소년 등 일반적인 판결문을 이해하기 어려운 당사자들을 위해 쉬운 문장, 간명한 어휘, 시각 자료 등을 활용한 새로운 형식의 판결서를 제안하고 있다. 예컨대 형사 판결 중 ‘이 사건 공소사실 중 모욕의 점에 관한 공소를 기각한다’는 주문에 ‘갑이 을에게 욕한 것을 처벌하지 않습니다’라는 해설을, 민사 판결 중 ‘별지 목록 기재 교통사고와 관련하여 원고의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금 지급채무는 존재하지 아니함을 확인한다’는 주문을 ‘김○○은 이□□에게 줄 돈이 없습니다’라는 설명을 덧붙이는 식이다.

이는 단순히 소수자를 위한 배려만은 아니다. 재판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법은 주권자인 국민을 위한 것이다. 판결은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해져야 한다. 판결문이 설득의 언어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그렇게 될 때, 법은 통보가 아니라 설명이 되고, 재판은 배제가 아니라 참여가 된다.

오늘도 판결문에 담길 문장을 썼다 지운다. 더 나은 단어가 있을까, 표현은 충분히 명확하고 설득력 있는가를 스스로 묻는다. 그렇게 생각하고 문장을 다듬다 보면 하루가 지나간다.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이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원고가 졌습니다.” 이 문장은 법의 언어가 그 높이를 조정하기 시작했다는 조심스러운 선언이다. 판결 주문 그 첫 줄의 변화가, 결국 사법 신뢰의 회복을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모든 문장은 누군가에게 닿기 위해 쓰인다. 법률문장이라고 다를까.

지선 1년 앞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