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책]이무상 여덟번째 시집 상재… “시로 지은 춘천의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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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을 품은 시인의 눈으로 써 내려간 춘천의 시적 연대기

춘천이 고요히 품은 땅의 목소리가, 오랜 시간 숙성된 시의 언어로 되살아난다. 이무상 시인의 여덟 번째 시집 ‘시(詩)로 쓴 춘천 이야기’는 단순한 회고가 아닌, 고향이라는 공간에 깃든 역사와 정신을 복원하려는 진지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시집은 ‘개인’의 기억을 넘어 ‘공동체’의 잃어버린 정체성을 호출하는 작업에 가깝다. ‘워나리라 부르던 우리의 강(江)’에서 ‘소양강’으로, ‘밝뫼’에서 ‘발산리’로 바뀐 이름들 사이에는 정복과 침탈, 잊힘과 회복의 역사가 층층이 쌓여 있다. 시인은 이러한 역사적 단층을 ‘맥국(貊國)’이라는 고대의 이름으로 다시 부른다. 춘천은 단지 강원도의 도시가 아니라, “대륙의 요동에서 고조선과 함께 남하한 맥족이 도읍한 땅”이라는 장대한 서사 위에 놓인다. 이무상 시인의 시는 단정하고 정제된 언어로 쓰였지만, 그 내면에는 시간의 강물처럼 깊고 끈질긴 탐색이 흐른다. 단지 한 시인이 개인의 노스탤지어를 노래한 것이 아니라, 강원도라는 지역, 더 정확히는 춘천이라는 공간에 얽힌 기억과 정체성, 민족적 기원을 문학적으로 복원하려는 실천에 가깝다.

‘맥국을 찾아서’ 연작에서는 춘천 신북읍 발산리를 고대 맥국의 궁궐 터로 상상하며, 수리봉에서 뻗어나간 산맥의 지형과 소양강을 외성으로 감싸는 구조를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이러한 시편들은 단순한 지리적 묘사를 넘어, 땅이 기억하고 있는 사라진 제국의 기억을 호출하는 주술적 장치처럼 읽힌다. 맥국의 왕 ‘태기왕’을 이름으로 품은 태기산이나, 봄마다 소를 제물로 바치던 ‘소슬뫼(우두산)’ 같은 지명들은 단지 옛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독자에게 ‘나는 어디서 왔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거울이 된다. 머리글에서 밝힌 것 처럼 이 시집은 ‘시적 고고학’이라 할 만큼 치밀한 자료 탐독과 정신적 헌신의 산물이다. 강원일보 논설위원 김영기 선배의 조언으로 시작되었다는 이무상 시인의 고향 기록은, “글로 고향에 보답하라”는 명제에 대한 시인의 성실한 응답이기도 하다. 비문학과 문학의 경계에 선 이 시집은, 독자로 하여금 춘천이라는 공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가 매일 밟고 있는 땅에도, 그곳에 들리는 강물 소리에도, 그 이름 아래 감춰진 역사가 있음을 상기시킨다. 그러한 ‘기억의 회복’이야말로, 이 시집이 품고 있는 가장 시적인 진실일 것이다. 한편 ‘시로 쓴 춘천 이야기’ 출판기념회는 오는 14일 오후 5시 강원문화예술연구소에서 열린다. 디자인하우스 刊. 154쪽.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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