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고, 예산은 힘 있는 곳에서 힘없는 곳을 비껴간다. 30조원이라는 추가경정예산이 움직이는 지금, 강원자치도가 국비 확보를 위해 총력전에 나섰다. 20개 사업, 2,233억원. 절박함이 숫자에 묻어난다. 춘천~속초 철도, 제천~영월 고속도로, 도계광업소 폐광 대응 등 한 줄, 한 줄이 지역 생존의 문장이다. 도가 발굴한 사업들이야말로 민생 회복과 산업 생태계 재편이라는 국가적 과제와도 결을 같이한다. ▼고려 태조 왕건은 군량이 부족하자 후백제 포석정까지 밀고 들어갔다. 생존이 걸린 전선에서는 욕심이 아닌 필요가 전투를 결정한다. 지금 도가 마주한 예산 전선도 다르지 않다. ‘소비쿠폰 지방분담’이라는 칼날 앞에서 도는 “못 낸다”가 아니라 “내면 죽는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민생을 말하면서 지방에 재정 부담을 전가하고, 중앙 정치권은 선심성 항목에는 통 크지만 지방 SOC(사회간접자본) 구축에는 박하다. 땅은 넓고 인구는 적다는 이유로 매번 뒷순위로 밀리는 논리, 그것이 반복될수록 강원은 천천히 가라앉는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예산 전쟁에서 이름을 남기는 건 실적이고, 실적의 전제는 전투다. 도는 일찌감치 ‘국비 확보 통합 전략회의’를 열고, 실무진은 국회를 돌며 발로 뛰었다. 하지만 국회의 문턱은 발로만 두드려선 열리지 않는다. 정치적 무게와 교섭력이 동원돼야 하고, 정부 설득이라는 외줄타기도 필수다. 야당이 된 여당, 여당이 된 야당. 거꾸로 선 정치 지형에서 강원의 입장이 또다시 중간쯤에 머물까 우려된다. ▼추경은 재정의 방향키다. 이 방향이 수도권을 향하면 지방은 그저 바람에 흔들리는 깃발일 뿐이다. 철도 하나 놓이는 건 선거용 치적이 아니라 지역의 생명선이다. 정부도, 국회도 이제는 더 이상 ‘말씀은 많은데 돈이 없다’는 궁색한 답을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도가 이번에도 손만 벌리다 돌아선다면, 그건 단순한 예산 미확보가 아니라 존재 자체의 무력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