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설]공공기관 발주, 있으나 마나 한 ‘지역의무도급’

건강보험공단·도로공사, 지역 업체 외면
도교육청, 외지 업체 비율 지난해 17.5%
‘지역 상생'', 실제 계약 과정에 지켜지지 않아

강원특별자치도 내 공공기관들이 지역 공사 발주 과정에서 지역 업체를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건설경기 침체로 도내 건설업계가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정작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앞장서야 할 공공기관들이 수도권 업체에 공사를 넘겨주는 현실은 납득하기 힘들다. 이는 지역의무공동도급제도가 있으나 마나 한 수준으로 전락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최근 ‘본관 회전문 교체공사’ 입찰을 일반경쟁 방식으로 진행하면서 지역 업체인 원주시 금속구조물·창호업체들의 반발을 샀다. 공단 측은 “지역제한은 의무가 아니라 권고사항”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제도의 취지를 감안하면 공공기관의 책임 회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공사의 규모가 작고 지역 업체의 역량으로도 충분히 소화 가능한 경우조차 외면한다면 도내 건설업체의 생존 기반은 더욱 약화될 게 불 보듯 하다. 한국도로공사 강원본부의 사례도 다르지 않다. 지난 4월 31억원 규모의 포장유지보수공사에서 지역의무공동도급을 적용하지 않으면서 약 10억원 규모의 일감이 수도권 업체로 넘어갔다. 현행 국가계약법은 공사 추정금액이 88억원 미만인 경우에도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지역의무공동도급을 적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선택이 아닌 적극적인 권고이며, 지역경제 여건을 고려해 자율적 책임을 다하라는 뜻이다. 문제는 비단 특정 기관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강원도교육청의 수의계약 건수 중 외지 업체 비율이 지난해 17.5%로 전년보다 2.4%포인트 높아졌다. 이 같은 수치는 ‘지역 상생’이라는 구호가 실제 계약 과정에서는 무력화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물론 교육청은 “지역 업체와의 계약 확대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지만 공공기관 간에는 지역 업체 참여를 독려하는 실질적인 시스템이 부재하다.

강원특별자치도는 지리적 특성과 군사 접경지역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민간공사 비중이 낮고, 도내 건설업체들은 공공 발주 의존도가 높은 구조다. 공공기관이 지역경제의 중심축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들의 외면은 곧 지역 소멸과 직결될 수 있다.

공공기관의 공사 발주는 단순한 계약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지역의 경제 생태계를 유지하고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사회적 책무를 수반하는 공적 결정이다. 지역제한이나 지역의무공동도급 적용 여부는 법적 의무이기 이전에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실현하는 출발점이다. 실제로 이를 적용하면 품질이나 효율성이 저해된다는 근거도 없다. 오히려 지역 업체의 경쟁력을 제고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선순환 효과를 낳는다. 이제는 각 공공기관이 ‘지역제한은 의무가 아니다’라는 말로 책임을 회피하는 구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역 건설업계가 설 자리를 잃으면 그 피해는 주민에게 되돌아오고 결국은 공공기관의 존립 근거조차 흔들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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