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사재판은 적정한 절차에 따라 실체진실을 발견하여 국가형벌권을 실현하는 과정이고, 실제 우리의 형사재판은 실체진실을 발견하는 것, 즉 ‘사실인정’이 주된 쟁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인정의 대상은 범죄사실 그 자체인 경우도 있고, ‘고의, 공모’ 등의 내부적 심리상태를 미루어 판단할 수 있게끔 하는 간접사실인 경우도 있다. 나아가 법리적인 다툼이 있는 사건에서도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대전제에 해당하는 법리 적용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 그 소전제에 해당하는 사실관계의 확정이 필요하므로, ‘사실인정’을 거치지 않는 형사재판을 상정하기는 어렵다.
우리 형사소송법은 제308조에서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의한다”라고 규정하여 법관의 자유심증주의(自由心證主義)를 사실인정의 기본 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법관은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닐 뿐만 아니라 어디까지나 주권자인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사법권을 헌법과 법률에 따라 행사하는 것이므로, 자유심증주의에서의 자유가 자의(恣意)를 의미할 수 없고, 사실인정이 법관의 독단(獨斷)이 되어서도 안 된다. 법관은 항상 겸손하고 성실한 자세로 개인의 양심이 아닌 법관의 양심에 따라 사실의 존부에 대하여 신중한 판단을 하여야 한다.
과학기술의 발달 등에 따라 사실인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증거들의 종류가 다양해졌으나,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것은 여전히 사실인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므로, 그 판단 기준에 대한 필자의 짧은 생각을 말씀드리고자 한다.
먼저 신빙성 판단의 대상인 그 진술 자체가 모순되는 부분 없이 일관성을 갖추고 있는지, 그리고 경험칙에 부합하는지 여부가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진술인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의 진술을 일관되게 꾸며낼 수도 있는 것이어서 진술의 일관성 등이 곧바로 진술의 신빙성을 담보한다고 볼 수 없고, 사람의 기억의 정확성에도 한계가 있으므로 진술에 일관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그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아울러 ‘어떤 행위가 통상적이고 합리적인 것인지’에 대한 생각이 사람마다 제각각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통용될 수 있다고 명백히 인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이상 섣불리 경험칙으로 삼아서는 안 되고, 사람이 언제나 이성에 따라 합리적인 생각과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니므로 경험칙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이라도 완전무결한 기준이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음으로 다른 사람의 진술 내용이 또 다른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신빙성 판단의 대상인 진술을 한 사람과 이해관계가 일치하거나 대립되는 사람의 진술은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렵고, 이해관계가 없는 목격자 등 제3자의 진술 역시 사람 기억의 한계 등으로 인해 그 정확성을 보장할 수 없으므로, 다른 사람의 진술 내용 역시 언제나 흠이 없는 기준이라고 볼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사건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물리적인 증거의 내용이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최근 증거방법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디지털증거가 이에 해당하고, 디지털증거 등장 이전부터 수집되어 왔던 계좌거래 및 통신내역, 과학적인 방법에 의한 감정결과, 처분문서, 메모, 장부 등 증거자료도 이에 포함될 수 있다. 위와 같은 증거들에 대해서도 당연히 위·변조 등이 있었는지에 관하여는 면밀히 살펴야겠으나, 그러한 조작의 흔적이 없다면 그 증거들의 내용을 진술의 신빙성 판단과 사실인정의 주된 근거로 삼는 것이 가장 객관적이고 다툼의 여지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따라서 형사재판을 담당하는 법관으로서는 기록에 현출되어 있는 위와 같은 객관적인 증거들의 내용을 빠짐없이 꼼꼼히 살피고, 사건의 결론과 관련 있는 사실인정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을 놓치지 않고 찾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며, 그러한 노력은 사실인정의 오류를 최대한 줄여 피고인 등 소송관계인들이 조금이라도 더 납득할 수 있는 결론을 도출해야 하는 법관의 책무를 다하기 위한 기본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