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80주년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기림의 날' 기념행사가 열렸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은 피해자인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피해 사실을 최초로 공개 증언한 1991년 8월 14일을 기념하는 날로, 2017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여성가족부는 이날 오전 10시 서울 중구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행사를 열었다.
'용기와 연대로 되찾은 빛, 평화를 밝히다'를 주제로 한 행사에는 국회, 정부, 시민단체 관계자, 청소년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기념식에는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97) 할머니도 함께했다.
휠체어에 의지한 채 행사장을 찾은 이 할머니는 행사 끝까지 자리를 지켰지만,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지 못할 정도로 컨디션이 좋지 않은 모습이었다.
현재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생존자는 단 6명에 불과하며, 고령과 건강 악화로 대부분 거동이 불편한 상태다.
이재명 대통령은 영상 메시지를 통해 "(할머님들의 증언은) 인간의 존엄과 보편 인권이 훼손돼서는 안 된다는 가장 근원적이고 가장 준엄한 호소"라며 "생존해 계신 여섯 분의 할머님들께 한없는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고 했다.
행사에 참석한 신영숙 여가부 차관은 "피해자 할머님의 삶을 돌아보면 진정한 광복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음을 느낀다"며 "위안부 문제를 끝까지 책임져야 할 국가적 과제로 인식하고 실천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올해 광복 80주년을 맞이했지만 위안부 피해자들은 아직 자유와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계신다.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위안부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역사의 진실이 바로 서지 않는 한 광복은 완전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34년 전 오늘은 고(故) 김학순 할머님께서 오랜 침묵을 깨고 세상에 나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증언해 주신 날"이라며 "전시 성폭력 참상을 알린 고발을 넘어,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인간의 존엄이 결코 훼손돼선 안 된다는 가장 근원적이고도 준엄한 호소였다"고 언급했다.
또 "할머님의 용기는 국내를 넘어 국제사회의 양심을 일깨웠고 연대의 물결을 만들어냈다"며 "지난한 역사의 어두움을 뚫고 나온 한 줄기 빛이었고, 진실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숭고한 이 용기를 잊지 않아야 한다"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처럼,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엄중한 책무"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위안부 피해자분들의 명예와 존엄이 온전히 회복될 수 있도록 총력을 다하겠다"며 "인권이 상식이 되고 평화가 일상이 되는 나라, 정의가 살아 숨 쉬는 세상을 반드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이 대통령은 오는 15일 한일·한미 연쇄 정상회담이라는 빅이벤트를 앞두고 외교·안보적 의미가 큰 광복절을 맞는다.
이번 광복절에는 취임식을 갈음하는 국민임명식도 예정된 만큼 이 대통령은 정교한 대국민 메시지를 다듬는 데 심혈을 기울일 전망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광복절 당일 오전 경축식에 이어 저녁에 열리는 국민임명식에서 내놓을 경축사 및 감사 인사 메시지를 조율하고 있다.
그간 역대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는 한일관계와 남북관계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며 큰 틀을 제시해왔다는 점에서 국내외적으로 이목이 집중돼 왔다.
특히 이번 광복절 경축식은 한일·한미 정상회담을 목전에 두고 열려 이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한 관심도는 그 어느 때보다 높다고 볼 수 있다.
당장 정상회담을 앞둔 일본을 향한 강경 메시지를 내놓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과거사는 과거사대로 원칙적 대응을 하면서도 경제·안보 협력을 강화한다는 '투트랙' 기조에 따라 짚을 것은 짚으면서도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에 무게추를 두는 제안을 내놓을 가능성이 그래서 거론된다.
아울러 이 대통령이 한일정상회담에 이어 곧바로 한미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인 만큼 한미일 공조 강화 역시 주요 메시지의 한 축을 이룰 것으로 관측된다.
무엇보다 북한을 향해서는 남북 간 긴장 구도를 대화·협력 구도로 바꾸겠다는 기조에 따라 대화를 타진하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발신할 것으로 보인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대통령은 언제나 '값비싼 평화라도 전쟁이나 긴장보다 낫다'고 말씀하셨다"며 "그런 점에서 남북 간에 신뢰 회복을 위해 한 단계씩 나아가는 과정을 이어가야 한다는 기존 입장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국민임명식의 경우 이재명 정부의 '진짜 출발'을 알리는 자리라는 의미가 있다.
인수위 역할을 한 국정기획위원회가 국정운영 5개년 계획 발표로 활동을 마무리했고, 이어 교육부·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를 발표함으로써 장관급 인선까지 마치는 등 '이재명호(號) 대한민국'이 본격 출항을 위한 준비가 끝난 시점이다.
따라서 이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지켜낸 국민에 감사의 뜻을 표하면서 국민주권 정부의 원칙을 재차 천명하고 경제 구조 혁신과 균형 성장을 통해 모두가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다짐을 전할 것으로 관측된다.
최근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 등의 사면·복권을 둘러싸고 야권이 반발, 다소간 국론 분열의 조짐이 보이고 국정 지지율에도 악영향을 미친 만큼 다시금 국민 통합을 강조하며 새 출발의 의미를 부각할 것으로도 예상된다.
이미 국민의힘과 개혁신당,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오세훈 서울시장 등 야권 광역단체장이 건강상의 이유나 조 전 대표 사면에 대한 항의 성격으로 불참을 선언한 상태다.
특검의 중앙당사 압수수색으로 격앙된 국민의힘이 '이재명 정부에 국민 통합 의지가 부족하다'는 프레임을 부각하려 할 것으로 관측되는 만큼 이 대통령으로서도 설득력 있는 메시지를 내놓기 위해 고심을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