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강원포럼]과거와 헤어질 결심

허욱 변호사(북경대 법학원 법학박사)

정권이 바뀌고 한중관계가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많다. 이에 사람들을 만나면 선문답 같은 질문을 던진다. “한중관계가 나아진다는데 구체적으로 뭐가 좋아질 것 같은가요?” 좋아지면 좋아지는 거지 뭐 이리 부정적인 사람이 있냐는 뚱한 표정으로 사람들은 말한다. 한한령이 풀리면 K 컨텐츠 들도 중국에 많이 진출하겠지. 단기간에 뭐가 좋아지겠는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틀린 말이 하나 없는데 뭔가 아쉽다.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은 가득한데 그 희망을 체감해 볼 만한 뭔가 좀 더 똑 부러지는게 없나 하는 기분을 떨쳐 버리기 어렵다.

모두가 갖고 있는 막연하지만 한중 관계가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의 가장 확실한 근거는 기저효과다. 과거 정권의 외교정책 기조로 중국이 상대적으로 배척되었던 기억이 있으니 설마 그때보다 더 나빠지기는 하겠냐는 기대다. 그렇다면 바닥을 치고 올라가 어떻게 어디까지가 좋아질 것인가가 문제인데 한중 관계의 개선을 전망하는 많은 사람들의 무의식 중에는 우리가 중국에서 한참 잘나갔던 그 시대의 향수가 녹아 있다.

과거 우리는 중국이 부족하고 결핍한 시절에 중국에서 많은 이익을 얻었다. 중국 사람들이 핸드폰, 자동차를 모두 우리의 브랜드로 쓸 수밖에 없었던 이른바 시대의 프리미엄을 누렸던 좋은 시절이었다.

2015년 중국 전승절 70주년 기념식에 박근혜 대통령이 천안문 망루에 시진핑 주석과 나란히 서면서 한중관계는 최고조에 이르렀다고 했으나 바로 다음해 이른바 사드 문제로 한중관계는 심해로 침몰했다. 그리고 2019년에는 코로나 사태가 발생했고, 2022년에는 한미일 공조를 강조하는 윤석열 정권의 등장으로 중국과의 심리적 거리두기는 계속되었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는 중국과 정치, 경제, 문화 모든 면에서 서로 데면데면한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한편 그 10년 동안 중국은 2015년부터 “중국제조2025”를 선언하며 제조업 강국의 꿈을 향해 힘차게 달려왔다. 강산도 변하게 한다는 10년 세월의 무서움을 중국이 증명해 냈다.

그렇다면 이렇게 진화한 중국과 마주하고 있는 2025년 한중관계는 악화된 것이 아니라 과거 우리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변화한 것이고 과거 한 때 좋았던 시절을 회고하며 앞으로도 다 잘 될 것이라는 지나친 낙관도 경계해야 할 일이다.

최근에 중국에 대해 듣는 말은 한결 같다. 중국을 실제로 겪어 봐라, 중국에 한번 가보라고 말한다. 직접 경험해 보지도 않고 중국에 삐딱한 일부 언론들을 통해 중국을 알려고 하니 중국에 대한 시선이 고울 리가 없다. 마치 어느 외국인이 북한의 노동신문에 보도된 한국의 모습을 보며 한국을 잘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 골프장은 대부분 미터로, 중국은 야드로 거리를 표시한다. 잣대를 조정하지 않으면 안 그래도 부족한 골프 실력에 공을 제대로 거리에 맞추어 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2025년 9월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기념 행사에 우원식 국회의장이 초청을 받았다. 중국에 대한 새로운 전략은 화려했던 과거와 헤어질 결심을 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아련한 추억의 사진첩은 가슴에 묻고 차가운 머리로 원점에서부터 다시 앞으로 10년, 100년의 청사진을 그려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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