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 45조 6천억 규모의 1·2차 추가경정예산(추경) 집행 효과 기대감으로 한국은행이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0.9%로 소폭 상향 조정했다.
한은은 28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5월 전망보다 0.1%포인트(p) 높인 0.9%로 제시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2023년 11월(2.3%) 이후 지난해 5월(2.1%), 11월(1.9%), 올해 2월(1.5%), 5월(0.8%) 등으로 지속해서 낮추다 이번에 처음 높인 것이다.
이번 한은 전망치 0.9%는 국제통화기금(IMF)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각각 제시한 0.8%보다 높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제시한 1.0%보다 낮은 수준이다. 또 지난달 말 기준 주요 해외 투자은행(IB) 8곳 평균 전망치(1.0%)보다 낮고 정부 전망치와는 같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초 외신 인터뷰에서 "1·2차 추경이 올해 성장률을 약 0.2%p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총 13조8천억원 규모의 1차 추경은 기존 전망에 이미 반영했고, 31조8천억원 규모의 2차 추경을 이번 전망에 추가했다.
한은은 소비자심리지수가 개선되고 실제 민간소비 회복으로 이어지고 있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4일 그린북에서 건설투자 회복 지연, 취약 부문 고용 애로, 수출 둔화 우려가 지속되고 있지만, 소비가 증가세로 전환되는 등 경기 회복 신호도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난 22일 발표한 경제성장전략에서는 하반기부터 추경 등 정책 효과가 나타나면서 소비를 중심으로 성장이 회복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KDI도 지난 12일 "하반기 이후 민간소비를 중심으로 부진이 다소 완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관세 불확실성과 그에 따른 수출 둔화 우려가 여전하지만, 이번 전망에서 큰 변수로 작용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은은 지난 5월 경제전망 때 미국 기본 관세가 10%, 품목 관세가 25%로 결정되는 기본 시나리오를 전제로 했다.
이후 통상 협상과 최근의 한미정상회담 결과는 이런 시나리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수준이라는 게 한은 설명이다.
한은은 내년 성장률 전망치의 경우 1.6%를 유지했다.
성장률이 2년 연속 2%를 밑도는 저성장 흐름은 역대 처음이지만, 그나마 경기가 올해 바닥을 찍고 반등할 것으로 보는 것이다.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1.9%에서 2.0%로 높였다.
원/달러 환율이 다시 1,400원에 육박한 가운데 폭염, 폭우 등 계절적 요인에 따른 물가 상승 요인 등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 역시 기존 1.8%를 1.9%로 높였다.

이에 앞서 금통위는 이날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2.50%로 유지했다.
상반기에 달아오른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주택 구입)'이 '6·27 가계부채 대책' 등으로 다소 주춤하지만, 여전히 서울 집값 상승세가 강한 만큼 섣불리 금리를 낮췄다가 부동산과 가계대출 불씨만 되살릴 위험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전문가들과 시장은 금통위가 10월께 인하에 나설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가계대출·집값 추이,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금리 결정 후 한·미 금리차, 추경 집행 효과, 미국 관세 협상 전개 상황 등을 확인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금통위는 지난해 10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p) 낮추면서 통화정책의 키를 완화 쪽으로 틀었고, 11월엔 시장의 예상을 깨고 금융위기 이후 처음 연속 인하를 단행했다.
이후 올해 상반기에도 네 차례 회의 중 두 차례 인하하며 완화 기조를 이어가다가 하반기 들어 금리를 7월과 8월 연속 동결한 것은 무엇보다 부동산·가계대출 등 금융시장이 매우 불안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수도권 지역 주택담보대출을 일괄적으로 최대 6억원으로 묶는 등 유례없는 강도의 6·27 대책을 내놨지만,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8월 셋째 주(18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보다 0.09% 올라 여전히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주택매매 수요를 뒷받침하는 가계대출의 경우 지난달 예금은행에서 2조8천억원 늘어나며 증가 폭이 6월(+6조2천억원)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지만, 6·27 대책 이전 급증한 주택 매매 계약 관련 대출이 시차를 두고 계속 실행되는 만큼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총재 역시 지난 1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해 "과열 양상을 보였던 수도권 주택시장과 가계부채 증가세가 6·27 대책 이후 다소 진정되는 모습이지만, 서울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높은 주택가격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어 추세적 안정 여부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경계했다.

이미 역대 최대(2.0%p)인 미국(연 4.25∼4.50%)과 금리 격차도 동결 결정의 근거가 된 것으로 보인다.
다음 달 16∼17일 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가 0.25%p 인하될 가능성이 거론되지만, 금통위가 만약 이번에 미국보다 앞서 0.25%p 추가 인하를 단행했다면 최소 약 20일간 차이는 2.25%p까지 벌어진다.
원론적으로 달러와 같은 기축통화가 아닌 원화 입장에서 기준금리가 미국보다 낮으면 낮을수록, 더 높은 수익률을 좇아 투자 자금이 빠져나가고 원화 가치가 떨어질 위험은 그만큼 커진다.
추경 집행 등으로 소비 심리가 빠르게 개선되고, 미국과 관세 협상 결과가 최악을 피하면서 '경기 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라도 빨리 내려달라'는 여론이나 정치권의 압박이 다소 약해진 점도 금통위에 동결 후 관망할 수 있는 여유를 줬다.
한은의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8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11.4로 7월(110.8)보다 0.6p 올라 2018년 1월(111.6) 이후 7년 7개월 만에 최고 기록을 세웠다.
안재균 한국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추경 집행과 금리 인하가 동반될 때 정부 지출의 승수 효과 확대를 기대할 수 있는 만큼 연내 금리 인하가 꼭 필요하다"며 10월 0.25%p 인하를 점쳤다.
조영무 NH금융연구소장도 "한은도 경기를 우려하고 있고, 특히 건설 투자나 수출 관련 관세 불확실성 등을 걱정하는 것 같다"며 "따라서 가계부채·부동산이 얼마나 진정되는지, 미국이 실제로 얼마나 금리를 낮출지 확인하고 4분기에 금리를 한 차례 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